나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증세가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면 마치 땅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서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몇 년 전에 추락 사고를 겪으면서 고소공포증이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조금만 높이가 있어도 마음이 불안할 정도다.
내가 사는 김해에는 경전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있다. 경전철을 타기 위해서는 폭이 조금 좁고 경사가 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경전철 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치 육교와 같은 느낌이고, 차가 옆이나 아래에서 쌩쌩 나다니는 소리를 들으면 ‘아, 넘어져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를 느껴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진심 100%로.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이 증상이 추락사고 후유증으로 더 커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계단을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항상 조심조심하고 있다. 특히 추락사고 이후 오른쪽 발의 후유증 때문에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걸음의 리듬이 맞지 않아 넘어질 뻔 했던 적이 적지 않다. 한 번 더 떨어지면 정말 크게 다칠 수 있어 늘 신경을 쓰고 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다 보니 문득 ‘어쩌면 나는 이 두려움으로 삶을 사는 한 가지 태도를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계단을 오르는 일과 계단을 내려오는 일은 우리 삶 그 자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계단을 오르고, 때가 되면 물러나기 위해서 계단을 내려온다.
사람은 높은 목표를 쳐다보며 한참 올라갈 때는 내려가는 길을 잘 살펴보지 않는다, 그 탓에 발을 헛디뎌 도중에 떨어지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할 때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위에서 앉아 있다가 내려가야 할 때가 생기면 그때부터 겁을 먹기 시작한다. 특히 권력이나 이익의 실권을 쥔 자리에서는 그 두려움은 배로 커진다.
그래서 위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권력과 이익의 기반이 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래를 등한시 여기고, 절대 자신의 손에 쥔 것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사익 추구에서 당연한 행동이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위에 앉아 있으면 멀리 볼 수 있고, 더 높은 곳을 또 쳐다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오면 내가 볼 수 있는 시야는 우물 안의 하늘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탓에 우리 사회는 갖은 부정부패를 통해서 사람의 욕심이 자리를 지키기는 데에 이용당하고 있다. 내려올 때를 놓치면 누군가 나를 강제로 떨어뜨린다.
지난 3월 10일 우리는 그 사건을 목격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람의 사익 추구를 위해서 높은 자리에 앉아 비리를 저지르다가 그것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일의 주인공은 내려가면 올라올 수 없는데다가 내려오면 다시는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억지로 버티다가 법의 힘으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것은 정치 이야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목표를 향해 올라가서 정상을 찍었다면, 다시 내려와서 새로운 목표를 찾는 게 더 즐거운 일이다. 만약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체력이 바닥났다면, 내려와서 다시 철저히 준비를 하고 올라가면 된다. 너무나 쉬워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한 번 올라간 자리에서 내려오는 걸 허락하게 하지 않는다. ‘올라가지 마시오.’라고 경고가 적힌 곳에서 무작정 올라가다 추락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오래 전에 김해 경전철 역에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적은 글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은 아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성인으로 추대 받았다.
위만 바라본다고 해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물처럼 겸허하게 지냈다.
결코 무리해서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고, 근심이 없었으며, 군자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올라가려고만 한다.
그렇게 억지를 써서 올라가면, 금세 떨어질지도 모를 절벽에서 공포에 떨어야 함에도
우리의 눈에는 눈앞에 적힌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경고 글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과 글을 적는 걸 취미로 할 때 적은 글이지만, 꽤 잘 적은 글인 것 같다. (웃음) 이 글을 적었을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대통령 무히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무히카는 “나는 인생을 간소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삶이 주는 여유가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이 바로 행복이지 않을까?
사람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하는 욕심의 덩어리다. 하지만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가진 것을 잃게 되지 않을까 더 노심초사한다.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수록 내려오는 길은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간 고양이처럼, 내려오지 못해서 위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우리는 나무 위의 위태로운 나뭇가지에 앉아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많은 책이 때때로 멈추어서 주변을 살펴보라고 말하는 건 ‘지금 이 높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라는 메시지다. 지나치게 높은 곳에 올라왔다가 허무하게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위만 바라보지 말고 아래도 종종 바라보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추구하는 소박하게 사는 미니멀 라이프이자 만족할 줄 아는 군자의 삶이다.
고소공포증인 나는 늘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래를 보면 도저히 그 계단을 오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딘가 올라서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아래로 고개를 숙인 채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 무섭다.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누군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듯 한 두려움이 등을 밀치는 것 같다.
결국 우리가 사는 삶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위로 올라가면서 내려와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내려가는 길이 무섭지 않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겁먹지 않고 더 안정된 호흡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올라가면 그냥 위만 보고 올라가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다.
삶은 복잡해 보이지만 뜻밖에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다.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높이에 올라와 있는지, 내가 올라가고 있는 계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 채, 많은 사람이 오늘도 위만 바라보며 올라가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엎어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지만, 올라선 계단은 다시 천천히 내려올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