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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Apr 24. 2017

자장면 배달 아저씨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1)

우리는 배달의 민족으로 불릴 정도로 음식만 아니라 다양한 물품을 배달 서비스를 통해 누린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처럼 배달 서비스가 잘 되어 있는 곳은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한국의 배달 문화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수준이 높다. 한국 사회는 배달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이 발전했고, 수출 강국에 이르렀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겨우 배달 문화 하나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우리의 배달 문화를 평가하고 싶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배달 문화와 합세해 어디든 가는 퀵 배달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했고,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비롯해서 어디든 정보와 물품이 빠르게 전달될 수 있는 산업기반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서비스의 혜택을 편하게 누리지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땀 흘리며 고생하시는 분들의 삶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종종 뉴스에서 음식 배달을 시켜놓고 배달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례가 나오고, 고등학생이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보탬이 대고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30분 시간제’를 지키기 위해 과속하다 사망한 사건도 나온다.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은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한 달에 최소 3번 정도는 책을 택배로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가슴 한쪽이 쓸쓸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서 누구나 빠르게 여러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 문화 속에서 지나친 경쟁이 붙어 ‘사람을 혹사시키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택배와 음식 배달을 하는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이나 매서운 겨울,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에는 가장 많은 고생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을 지불하니, 당연히 그 사람들은 응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에 과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위험 수준에 대한 보상’에 합당하는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 젓고 싶다.


꽤 오래 전 무더운 여름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 땀을 뻘뻘 흘리시며 자장면을 배달하는 아저씨와 짧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손등으로 닦아도 계속 흘러내리는 땀과 너무 피곤해보이시는 얼굴이라 “날씨가 너무 더워서 많이 힘드시죠?”라며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얼른 좀 시원해져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는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연휴인데 쉬지도 못하고(당일은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박근혜에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우리 일용직도 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순간 나는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아저씨가 아는 걸까?’하고 놀랐었는데, 웃으면서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하고 대답했다. 아저씨께서도 “그렇지요.”라고 대답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셨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 나눈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지 엿볼 수 있는 대화였다.


아저씨께서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신 “박근혜에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우리 일용직도 좀 사람답게 살 수 있게.”라는 말은 그냥 무심코 던진 말이 아닐 것이다. 평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셨던 그 아저씨는 ‘비정규직도 좋은 일자리다.’라고 말하는 정부의 대해 화가 아닌 씁쓸함을 표현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2014년에 있었던 일이다.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이 고된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더욱이 여름철 음식 배달은 속도가 생명인 경우가 많아 항상 과속 운전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빨리 빨리’ 주문에 맞출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신속 음식 배달은 사고 위험이 높은 데다 일부 업체는 사고가 나면 본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게 노동 개혁이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정부는 너무나 엉망인 노동 개혁을 통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목을 조였다.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커지고, 세월호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늦게까지 있다가 사망한 기간제 교사에게는 의시자 인정 또한 해주지 않았다.


자장면 배달 아저씨가 말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너무나 요원했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아르바이트생 최저 임금의 수준을 올리는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며 사회에 안착하고 있는데, 스스로 일본도다 더 잘난 국가라고 자칭하는 우리나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한 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실현이 어려운 걸까?


2017년 장미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리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 정치가 중요하다. 어떤 인물의 정치의 핵심 자리에 앉고, 어떤 인물이 그 대표를 보좌하고, 우리 시민이 어떤 인물을 국회로 보내는지가 핵심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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