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2)
한 강연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하나의 기업이 있었다. 그 기업은 한국의 구글로 불릴 정도로 직원을 먼저 생각하는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고, 기업의 대표 또한 젊은 대표로 그동안 기업에서 추구한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강연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그의 저서 <지겹지 않니, 청춘 노릇>을 읽었는데, 우연히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생겼다.
당시 인터넷 서점에서 진행한 저자와의 만남 강연 이벤트가 열렸던 것이다. 비록 서울이라고 하더라도 꼭 한 번 그 기업을 방문해서 직접 보고 싶었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고, ‘안준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직접 고소 싶었다. 그래서 비용이 어느 정도 들 것을 감수한 상태로 나는 저자와의 만남 강연 이벤트에 응모를 했다.
다행히 강연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연이 있기 전 이틀 전에 연락이 온 터라 급히 KTX 좌석을 알아보면서 ‘아, 이렇게 급하게 가려고 하니 조금 아닌 것 같다. 어쩌지? 금요일에 올라가야 하나?’는 고민을 꽤 오랜 시간동안 했다. 그러다 ‘난 청춘이니까, 일단 그냥 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무작정 나는 서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기대를 안고 도착한 핸드스튜디오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우람한 기업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딱 중소 벤처기업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에 시달리는 게 아니라 즐거워서 일을 하는 분위기였다. 안준희 대표가 강연 프로그램과 저서에서 말한 대로 모두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독자와 만남의 자리에 선 안준희 대표는 어떻게 핸드스튜디오가 탄생했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는지 등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의 기업을 조성하게 된 이유는 “사람의 개인성이 조직에 묻히기 시작하면 불행해지기 시작한다.”는 격언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빛이 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나는 안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게 될 가치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개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항상 조직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개인의 사소한 비전은 전체의 비전에 묻히기 마련이었고, 모두가 'YES‘를 말할 때 'NO'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유로움이 없는 건 존중과 배려와 없다는 걸 뜻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하게 될 4차 산업 시대를 건너지 못하는 커다란 벽과 같다. 4차 산업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인재다. 우리는 그것을 창의성이라고 말하고, 창의적인 인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러한 모난 돌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이질적인 시선을 모난 돌에게 항하며 ‘튀지 말라’고 말한다.
개인의 가치를 존중해주지 않는 곳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연구 개발이 일어날 수가 없다. 더욱이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제도는 고인 물이 되어 썩기 마련이다. 지난 몇 년 간 한국 사회는 그 썩은 물이 얼마나 커다란 사건을 일으키는지 경험했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 사건. 그 사건은 모두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안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때지만, 지금 글을 정리하면서 다시 그 때의 글과 영상을 보면 문득 오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되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먼저 걸어 나간 안 대표의 철학은 그래서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스마트TV 애플리케이션의 최초 개발 기업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직접 핸드스튜디오에서 들은 안 대표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과 닮아 있었다. 안 대표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오늘 내가 행복한가? 나는 착한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 또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 일에 나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하는가?‘라고 묻는다고 했다.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경영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경영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자의 참된 비전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가 그랬던 것처럼, 안 대표 또한 그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나는 이 묘한 우연의 일치가 우연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가는 데에 무엇보다 필요한 자세라고 느껴졌다.
당시의 모든 이야기를 일일이 다 옮길 수 없지만, 그날의 시간은 서울에 간 것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그 이후 몇 번이나 안 대표와 관련된 강연이나 기사를 읽었고, 그가 집필한 <지겹지 않니, 청춘 노릇>이라는 책은 지금도 몇 번이나 펼쳐서 읽는 책이 되었다. 오늘 청춘으로 살아가는 여전히 의무와 개인적인 욕구가 뒤섞이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의 저서 <지겹지 않니, 청춘 노릇>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짧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내 인생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혹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일단 시간을 보내고(길을 가고) 있는 청춘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인생인데, 스스로 가야 할 방향도 제대로 모른 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토익 점수 따기' '학점 만들기' '어학연수' '공모전 수상' 등을 열심히 해두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길에 닿을 것이라는 청춘들의 막연한 믿음은 과연 위 이야기에 나오는 상인의 어리석은 믿음과 얼마나 다를까요.
청춘들에게 물었습니다.
"열심히 여행 중이군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랬더니 청춘들이 대답했습니다.
"네, 아직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목적지도 없이 일단 열심히 가는 것인가요?"
청춘들이 대답합니다.
"네, 제게는 훌륭한 말(토익 점수)과 충분한 노잣돈(학점), 그리고 길을 잘 아는 마부(학벌)가 있으니 언제든지 목적지를 바꾸어도 된답니다."
깜짝 놀라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생겼는데, 지금 아무렇게나 가고 있는 이 길과 정반대에 있다면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지 않을까요?"
청춘 여러분,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 그 전에, 갈 곳은 정하셨나요? (p85, 지겹지 않니 청춘노릇)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일단 무작정 가는 청춘들. 우리는 언제나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는 고민하기 전에 일단 먼저 출발하고 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배운 학교의 교육은 그랬고, 부모님은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 전에 과제를 던져주면서 ‘너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고 말하며 생각을 멈추게 했다.
대학 전공도 성적에 맞춰서 입학하는 바람에 내 일과 이어지지 않고, 우리는 2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춘기를 겪고 있다. 오히려 입시 공부에 전력을 다 쏟지 않아도 되는 20대가 사춘기에 하는 자아 정체성을 찾는 데에 더 알맞은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취업난 때문에 취업 걱정 하느라 숨도 쉬지 못하고 보내는 청춘을 보면 몹내 아쉬움이 든다.
핸드스튜디오는 직원들의 명찰에 자신의 꿈을 적는다고 한다.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기업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기업과 안 대표의 철학.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토록 다양하고, 좀 더 나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고, 좀 더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오늘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