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후 미우 May 05. 2017

그것도 공부라고 말할 수 있나요?

03.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를 말할 때는 언제나 시험을 대비해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오답 노트를 작성하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한국 청소년 평균 공부 시간이 하루 8시간이라고 하는데, 이 수치는 OECD 국가 평균 시간보다 2시간 이상 더 많은 시간이다. 단순히 시간이 많은 것도 있지만, 가장 재미없게 공부를 하고 있다.


 아마 우리는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시기에 운동부로 들어가서 운동을 하거나 일찍 취업을 목표로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무턱대고 책을 펼쳐야 했다. 매학기 돌아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최종적으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발버둥 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한 공부에서 기억에 남은 게 별로 없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법과 사회와 정치, 사회문화 같은 과목은 지금도 꾸준히 관련 책을 읽고 있어 기억하고 있지만, 수학 시험을 위해 외웠던 공식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과목은 과목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놀 수 있는 시간,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시간을 포기하면서 공부를 죽어라 했었지만, 막상 남는 게 없어 허탈함이 느껴진다. 내가 좋은 명문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모습은 지방대였던 '나 한 사람'의 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서울대학교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서울대학교 학생도 똑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 대학교에 들어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때 한국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비난받는 이 말이 당시 공감한 이유는 그냥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라는 어른의 말과 달리 대학에 와서도 계속 힘들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과제가 이어지고, 등록금의 부담을 부모님께 짊어지게 한다는 부담이 더욱 깊은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대학생이 대학에 들어와 청소년 시기에 해보지 못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 나는 대학에 왔지?’ 같은 자기 이유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 뒤늦게 방황한다. 공부만 하던 학생이 갑자기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니 삶에 지쳐가면서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러한 필연의 과정을 좀 더 웃으면서 내가 성장하기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공부'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하는 게 공부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배우는 것도 '공부'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한 고등학생의 사연을 들었다. 그 여학생은 시험공부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만 하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하려고 한다고 김제동에게 수줍게 말했다. 그 말은 김제동은 그 여학생에게 “진짜 공부하네.”라고 말했다. 그 여학생은 눈을 크게 뜨며 "그게 공부에요?"하고 되물었었다.


 김제동은 그 여학생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게 공부죠.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을 하는데, 그게 진짜 공부지."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나는 이 말이 우리의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험을 위한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공부를 좀 더 넓은 의미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좁은 의미로 공부에 접근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보아야 할 공부를 보지 못하고, 공부는 항상 싫은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해야 하는 공부이니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괜히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꼴찌가 아니고, 괜히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일등이 아닌 거다. 공부를 언제나 시험과 성적이라는 좁은 시선으로 접근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진학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에게 비판하는 건 절대 옳지 않다.


 "저는 대학에 가지 않고, 먼저 취업할래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과 함께 '네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서 취업해서 먹고 살려고?' 같은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학교와 가정에서 '대학은 취업을 위한 최선'으로 배웠었으니까.


 책을 읽는 일 자체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른이 지정한 권장 도서를 읽어야 했고, 심지어 독후감까지 억지로 써야 했다. 그래서 '책 읽기=공부'라는 바보 같은 공식이 만들어졌다. 괜히 한국에서 독서량이 적은 게 아니다. 이런 잘못된 접근이, 잘못된 생각이 점점 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사회에 이런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오랫동안 굳혀진 제도와 분위기를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노동 가치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스스로 계급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덴마크와 독일 같은 나라처럼 한 사람의 노동 가치에 차별이 없어지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회를 바꾸지 못하지만, 우리는 나 자신과 내 주변 가족에게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자녀의 말에 "네가 뭘 보여줘야 그것을 믿지! 그냥 공부나 해!"라며 잔소리만 하지 말고,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작가의 이전글 이제는 달라지는 엄마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