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한국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김치찌개는 얼큰한 매운맛이 일품이다.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식욕을 돋우면서 '아, 맵다.' 하면서도 계속 숟가락으로 찌개에 밥을 먹게 하는 큰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 한국 사람 중에서 김치찌개를 비롯해 매운맛의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특히 어릴 때 학교와 학원을 오고 가면서 먹었던 꼬지집의 '폭탄맛 꼬지'는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다. 도저히 물 없이는 먹을 수 없는 그 꼬지를 들고 먹으면서 친구들끼리 '아, 진짜 맵다 ㅋㅋㅋ' 웃으면서 먹던 그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도 매운맛을 찾아 다니면서 매운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사람이 평범하게 가장 좋아하는 맛은 단맛과 매운맛 두 개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매운맛에 더 쉽게 중독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매운맛을 맛볼 때 짜릿한 쾌감 같은 아찔함을 맛볼 수 있어 쉽게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험함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번지점프를 비롯해서 롤러코스터, 바이킹 등 보기만 해도 아찔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안전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그 아찔함에 밀려오는 즐거운 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운맛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매운맛은 통증을 유발하지만, 그 아픔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거다.
아픔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이 말이 바보 같은 말로 느껴지지만,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매운맛 치킨은 이것을 최상의 레벨에 도달하게 만든 치킨이다. 치킨 튀김이 주는 '바사삭' 씹히는 감촉과 '맵다'고 말할 수 있는 적당한 매운맛이 우리가 마약 중독처럼 빠지게 한다.
잠시 상상해보자. 오늘 저녁은 콜라(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맥주)와 매운 치킨을 가지고 야구를 보면서 먹기로 했다. 매운 순살 치킨을 한입 베어 먹으면, 제일 먼저 우리는 튀김의 바삭한 맛을 느끼고, 고추의 짧은 매운맛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닭고기의 촉촉한 맛을 느낀다. 으아아, 대박이다.
그리고 매운맛이 서툰 사람은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음식을 찾는데, 그래서 초콜릿과 꿀 등의 원료를 이용해 단맛을 만드는 음식은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한국에서 정말 놀라운 열풍을 만들어냈던 '허니버터칩'을 나는 아직 실물조차 보지 못했는데, 허니버터 신드롬은 단맛이 가진 중독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이렇게 매운맛과 단맛을 찾는 대표적인 이유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나도 조금 짜증이 나는 일이 있으면 초콜릿을 찾아 먹거나 매운 치킨을 시켜 먹을지 고민한다. 어떤 사람은 먹고 싶어서 먹는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는 나도 모르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일요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 투유>에서는 '중독'과 관련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매운맛에 빠지는 이유를 최진기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은 우리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불안과 우울 때문이고, 그리고 그 불안과 우울은 사회‧정치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덴마크에는 전국의 식당 종업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 '3F'가 있어요. 전체 노조원이 32만 명에 이르죠. 우리 식당 동료들도 모두 여기에 가입해 있고, 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부터 노조원이에요. 40년 동안 노조비로 매달 1400크로네(약 26만 원)씩 내왔죠. 만약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가 발생하면 노조에 알리고 중앙의 노조가 사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는 40년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부당 대우를 당한 적이 없으며 거리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매달 1400크로네씩 꼬박꼬박 노조비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하고 있음을 느껴서 좋고 안정감이 들어서 좋습니다. 행여 실직하게 되면 노조와 정부가 연대해 1년 6개월 동안 매달 1만 9000크로네(약 350만 원)를 주거든요. 물론 노조원이 아니어도 정부의 실업 보조금을 2년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보험으로 노조비를 내는 거죠. 그래서 실직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p30)
우리 사회가 시민에게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 제도와 정치적 기반이 있는 사회였다면 지금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최진기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잠시 '왜 나는 매운맛과 단맛을 찾지?'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자.
나 같은 경우에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매운 치킨을 시켜먹고, 일주일에 세 번은 매운맛 돈가스를 먹고, 거의 매일 초콜릿을 한두 개씩 먹는다. 이렇게 먹으니 살이 찔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이런 음식을 찾는 이유는 '맛있다'는 이유보다 그냥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매운맛은 우리에게 통증을 유발하는 맛이다. 매운맛이 강하면 아프다고 느끼는데, 나는 그 맛을 음식의 맛으로 느낀다. 보통 평범한 맛은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나는 내 몸에 축적된 사회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초콜릿의 단맛은 짜증이 나는 일에 지친 나를 잠시 달래준다. 글을 원활히 쓰지 못해 짜증을 받을 때나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초콜릿 한 개를 입에 머금는 시간은 짧은 휴식이다. 아마 내가 초콜릿이나 케이크를 비롯해 단 맛이 강한 스위치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초콜릿과 매운 돈가스와 매운 치킨을 자주 먹게 되고, '중독'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의존하는 것 같다. 먹으면 살이 찌고, 위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쉽게 끊지 못하는 단맛과 매운맛의 중독. 아직 내가 여기서 벗어날 때는 먼 훗날의 일인 것 같다. (한숨)
최진기 선생님께서 '개인의 중독은 사회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서 매운맛 중독에서 벗어나고,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 흡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통계를 살펴보더라도 경기가 침체되고, 사회가 불안해지면 자연스럽게 도박과 흡연, 음주 등의 중독 문제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득이 적은 사람들은 안정된 고용과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가진 직업을 갖기 어려워 체중관리가 어려워지고 비만이 될 확률이 높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비만이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현재는 환경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우리 한국 사회는 솔직히 희망이라는 단어가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회다.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를 비롯해 무능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부와 시민 사이에서는 불신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고, 불통과 개인의 사익을 추구한 정부 탓에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불안감 없이 살기는 어려운 사회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매운 치킨과 달콤한 과자를 찾는다. 혀로 핥으면 단맛이 입안에 퍼지는 과자와 아프다고 느낄 정도로 매운 음식으로 도대체 무엇을 우리는 또 잊으려고 하는 걸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는 왜 사회 정치에 관심이 필요한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