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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May 16. 2017

내가 나로서 시작한 인생의 첫 문장

04. 노지 생활 백서

사람은 첫 만남, 첫인상, 첫 문장. 첫사랑 같은 ‘처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만약 우리의 삶을 ‘나’라는 자각과 함께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 처음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굉장히 심오한 질문처럼 여겨지지만, 뜻밖에 우리는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있을 질문이기도 하다.


 내가 온전한 ‘나’로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마음에 새긴 첫 문장은 "싫다."이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거짓말로 칠한 가면을 쓰고 모두 눈앞에 보이는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지냈고, 위선으로 포장한 악행을 멈추지 않고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붉게 핏발이 선 눈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싫다. 정말."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 시절에 조금 더 생각하는 힘이 생겨나면서 겪은 이야기다. 평범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았던 시기를 지나서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나는 내가 처한 부조리한 현실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살기 싫다.'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마음 깊숙이 아픔으로 새긴 그 첫 문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작은 심장을 가진 아이는 웃는 일보다 우는 일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살아가는 행위에 지쳤고, 현실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조차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면서 '싫다.' 딱 한 마디로 적힌 첫 문장에 두 번째 문장이 이어졌다. 그 두 번째 문장은 바로 '책과 애니메이션은 재미있다.'였다. 여린 가슴에 아픔으로 새겨지던 글자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첫 문장이 '책과 애니메이션은 재미있다.'였었다. 그때 나는 진짜 웃을 수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이 직접 눈에 보이는 것을 판단하기 시작한 시절의 첫 문장은 다양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던 사람은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이 등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처럼 자신과 주변을 부정하는 마음이 담긴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마음에 새긴 첫 문장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마음에 새긴 첫 문장은 '나'를 무엇보다 잘 드러내는 말이고, 아무리 거짓말로 타인을 속이려고 하더라도 끝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이자 생각이자 출발점이다.


 사람은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모습은 아주 사소한 일부분이다. 그 사람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첫 문장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첫 문장이 어떤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지닌 본질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마음속에 새긴 첫 문장을 알 수가 없다. 그 문장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우리 자신도 내가 새긴 첫 문장을 알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만남과 인연 사이에서 잘못을 되풀이하고, 아파하고,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 괴로워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우리는 많은 문장을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짧은 몇 문장이 새겨진 우리의 마음이 우리가 사는 방향을 결정하고, 생각을 결정하고, 사랑을 결정하고, 욕심을 결정하고, 결말을 결정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마음에 새긴 첫 문장을 따라 걸어가는 중이다.


 아마 많은 부모가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따뜻한 책을 읽어주거나 클래식 같은 잔잔한 곡을 들려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좋은 이야기와 음악을 접하면서 처음 만난 이야기와 음악을 기억해서 마음에 새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이런 노력을 어릴 때만 하지, 아이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자신의 세상으로 살아가는 시기에 노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서로 변변치 않은 이유로 티격태격 다투고, 직장 상사 혹은 주변 사람의 뒷담화를 하고, 친구를 따돌리는 차별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다.


 듣고, 보고, 주는 것을 떠나서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는 문장이 비로소 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첫 문장이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새긴 첫 문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뒷이야기로 이어지고, 첫 문장에 따라 두 번째 문장이 결정되고, 삶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지금 나는 어떤 문장을 써가는 삶을 사는 걸까? 때때로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써가는 이야기가 정말 내 이야기가 맞는지, 첫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결말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중간에 다시 이야기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이 쓴 첫 문장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언제라도 이야기를 수정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짓기 위한 충분한 여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막상 중간에 이야기를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백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내일 다시 고쳐 써야지' 하고 페이지를 넘긴 순간, '마지막 장입니다.'이라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떤 기분으로 마지막 문장을 써야 할까? 동화처럼 '그 이후로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문장을 채울 수 없으므로 우리는 마지막을 외면하려 한다.


 그러나 각자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다. 나처럼 '싫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사람이 '그래도 즐거웠다.'는 문장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삶을 즐겨야 하는 걸까?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역시 빌어먹을 세상이었다.'로 마무리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새롭게 해가 뜨는 하루의 첫 문장을 쓰는 것부터 시작하자. 어쩌면 그 문장이 최후의 문장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새로운 첫 문장을 쓰는 새로운 페이지이자 마지막 문장을 쓰는 마지막 페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모든 일의 시작은 위험한 법이지만, 무슨 일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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