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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말자

by 덕후 미우
"문제는 많은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불만스러워한다는 점이다. 주어진 일에 불평불만을 갖고 원망만 한다면, 그 일을 마주하는 것 자체에 짜증이 날 뿐 아니라 그 일을 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여겨진다. 그럴수록 자신을 더 무능력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시험해보지도 않은 채 달아나려고만 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사람의 능력은 여러가지가 있다. 공부를 잘 하는 능력, 연애를 잘 하는 능력, 정치를 잘 하는 능력, 연구를 잘하는 능력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곳에 능력 좋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서는 좀처럼 그 능력 개발을 위한 수업을 들은 적이 별로 없었다. 모두 똑같이 책상에 앉아서 똑같은 시험 문제를 풀어야 했고, 모두 똑같은 평가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으로 줄을 세웠다.


나는 중학교 시절 때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공부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세운 계획과 목표를 실천하면서 내가 흥미를 가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런데 어른들이 보기에 이 모습은 썩 좋게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특정 과목에서 성적이 좋아도 다른 과목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전체 등수가 떨어지는 데다가 평균 점수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른들에게 아주 불성실한 학습 자세로 보였을 것이다.


어른들은 내가 어떤 과목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과목을 더 잘할 수 있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전체를 통해 남과 비교하면서 "넌 왜 쟤랑 비교해서 그것밖에 안 되냐?"라는 말을 던질 때까 많았다. 나는 어른들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스스로 계획을 세워서 목표를 실천하는 일에 뿌뜻함을 느낄 수 없게 되어 점차 공부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무엇을 하더라도 대충대충하게 되었던 거다.


내가 좋아하는 요네자와 호노부가 쓴 <고전부>라는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는 초에너지절약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간단하게."라는 뚜렷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10대 시절에는 오레키 호타로를 알지 못했지만, 10대 시절에 내가 보낸 시간은 오레키 호타로가 추구한 초에너지절약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넌 뭘 하더라도 그렇게 어중간하냐?'라는 지적을 같은 학원에 다녔던 친구로부터 들은 적도 있다. 확실히 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대충인 내 모습은 어중간한 태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흥미를 가지고 시작한 일임에도, 누군가 개입하며 '왜 그것밖에 못 하느냐?'라고 지적하면 금방 흥이 식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나는 '어차피 내가 못하는 거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매사 불만을 품거나 '나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아, 진짜 살기 싫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능력이 없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천편일률적인 일을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일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남과 비교를 통해 더욱 비참하게 자신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나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읽게 되었다.


<왜 일하는가>의 제목에서 말하는 '일'은 좁은 의미로 우리가 평소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고, 넓은 의미로는 우리가 살면서 보여주는 평소 생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책을 통해서 지금 하는 일의 가치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바른 가치'를 추구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놀랐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대충대충했던 자세를 크게 반성했다.


비록 내가 모든 분야에서 잘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일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었다. 나는 <왜 일하는가>를 통해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평가 기준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까지 어중간하게 하던 일 중에서 정말 좋아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다음 단계로 내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은 완성도도 부족하고, 동생에게 "형은 블로그 말고 뭘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잖아."라는 지적을 받으면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하는 일의 과정에서 후회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계속 열심히 노력하는 이 일이 고작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면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렇게 땀 흘린 과정에서 보람을 찾고,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된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땀 흘린 사람의 땀 냄새를 배신하지 않는다. '당신의 노력을 보니, 당신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며 신이 손을 내밀 정도로 자기 일에 대한 무한한 집념과,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가는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위대함과 평범함의 차이는 결국 마음가짐과 노력이라는 1퍼센트에 달려있다.


과연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었을까?


20대의 나는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물었고, 글을 쓰면서 '정말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솔직히 지금도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 스스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일을 즐기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그것 또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좋게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고, 불만스러워하면서 고통 받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나는 그 모든 경험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기가 되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커다란 자산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내버려두고 있지만, 내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자세가 바로 앞으로 내 인생의 궤도를 크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20대의 나는 삶을 배우고, 삶을 실천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들어가 실패를 하더라도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어느 길을 선택할지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가 만든 왜소한 결과를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잣대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길을 가려고 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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