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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04. 2015

오늘 불행을 쓰다

전혀 왜소하지 않은 청년의 이야기

작은 소년은 자라서 이제 전혀 왜소하지 않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의 주변은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청년은 행복보다 불행하다는 감정이 강했습니다.

청년은 가슴에 품었지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꿈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를 글로 썼고, 청년의 버팀목이 되어준 책을 소개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했죠. 청년이 겪었던 경험과 들었던 이야기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거든요.

어느 사이에 청년은 꿈이 아니라 욕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욕심을 쫓아가다 크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영영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려움 앞에서 청년은 다시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내가 원하던 삶은 뭐지?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난 왜 이렇게 불행하지?'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언제나 인스턴트 식품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괜찮았습니다.

이게 청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필요했거든요.

조금씩 청년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옅은 웃음도 머금을 수 있었고, 작은 행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의 일상은 서서히 다시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애초에 정상적인 가정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청년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날 위기이 처했습니다.

외삼촌이 어머니의 통장으로 사기를 쳐서 1억 5천 만 원의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불안했습니다. 어머니가 자살을 하지 않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청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더 세상은 약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를 독점하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해서 약자는 뭉쳐야 하지만

약자는 상대방이 가진 작은 생존을 빼앗아 자신의 부를 늘리고자 엉망진창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청년은 어떤 희망적인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는 지식을 최대한 말씀드리면서 법을 진행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이 문제는 추석을 앞둔 어머니와 저와 동생이 짓눌릴 듯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앞으로 청년은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사람들은 욕을 합니다. 청년이 똑바로 살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청년이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조금 더 일찍 취업을 해서 기반을 마련했다면 달랐을 거라고 합니다.

청년은 피눈물을 삼키면서 외쳤습니다.

"젠장! 빌어먹을!"

확실히 청년은 잘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매일 글을 쓰면서 삶을 고민하는  것뿐이었죠.

청년은 다시 두 다리를 끌어안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고민을 해봅니다.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서 '기쁜 일이든 힘들 일이든 '그저 그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기쁘다고지나치게 들뜨지도, 힘들다고 땅이 꺼질 듯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이라는 말을 읽었는데, 정말 개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청년도 그대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어머니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한 세상이었죠.

청년은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나라에, 빌어먹을 사회에, 빌어먹을 관계에... 도대체 무엇이 있느냐고.

청년은 오늘도 그렇게 불행을 쓰고, 칼로 살을 베며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청년의 눈에서 피눈물이 마르는 날이, 타인을 증오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날은

아마 평생 오지 않겠죠.

저는 그래서 사랑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고, 털털 웃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청년에게 불행을 가르쳐주면서 절망하도록 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세상은 청년에 더는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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