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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06. 2015

나는 비범함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바랬던 것은 단지 그림자처럼 사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주님 왕자님처럼 살고 싶어 한다.
나라고 왕자님처럼 살면서 마음도 좋고 얼굴과 몸매도 좋은 공주님을 싫어하겠는가.
이것은 어떤 전문적인 지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범함을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재능이 없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 적은 있지만
무엇이든 비범함을 가지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욕심을 품어보 적은 없다,

내가 바랬던 것은 단지 그림자였다.
단지 그림자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소년이 평범하게 결혼을 해서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었습니다.

평범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나는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평범보다 다른 쪽에 치우쳐진다.
불행하거나 행복하거나.

평범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딱 중간이다.
불행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고, 그냥 그런 거다.
단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할지 상상해보았는가.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돈과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병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평범함은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과 행복은
어떤 비범한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해지는 게 아닐까?

나는 비범한 그릇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허무라는 그릇.
이 허무라는 그릇은 모든 세상의 빛을 빨아들이며 빛을 잃게 한다.

그런 허무를 끌어안고 나는 25년 간 살아왔다.
그리고 그 허무 속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탁한 감정은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공간에서 어떤 따스함도 느낄 수 없게 했다.

나는 이런 비범함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바랬던 것은 오직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림자였다.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눈 밖에 나지도 않는 그런 삶이었다.

오늘 내가 괴로워하는 이유는 내가 비범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제 잘난 듯이 말할 수 있는 장점이지만
나는 그 비범함으로 아픔을 마주한다.

오늘도 이 끝을 알 수 없는 허무라는 이름 아래에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행복해지려는 의지가 빨려 들어간다.
이윽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는 허무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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