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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Sep 15. 2015

두 개의 세계가 있는 식탁

공허와 소음 사이에서

식탁에 앉아 홀로 밥을 먹고 있노라면

입에서 질끈질끈 씹히는 밥알과 김치 소리 이외에

어떤 소리고 나지 않는 식탁의 공허함에 삼켜질 것 같을 때가 있다.


혼자 먹는 밥 한 공기에 김을 싸매고 있으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바람의 향기가

김 위에 작은 향신료를 더해주지만


젓가락으로 아가리에 밥을 처넣으면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내가 뭘 쳐 먹는 건지


오직 무기질적인 소리만 들리는 식탁이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한쪽에서는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난다


바로 TV 소리다.

TV의 가족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사코 웃으면서 함께 밥을 먹으며 놀고 있다.


TV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웃음 소리가 만드는 세계

내 입 속에서 나는 밥과 김이 한 되 섞이는 소리가 만드는 세계

내 식탁 위에는 두 세계가 공존하며 공허와 소음 사이에서 미로를 만든다.


도대체 나는 어느 쪽 세계에서 살고 싶은 걸까.

도대체 나는 어느 쪽 세계에서 사는 걸까.

도대체 나는 어느 쪽 세계에서...


그렇게 오늘도 무기력하게 밥알을 씹는다.

이미 맛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고

이미 소리를 듣지 않은지 오래다.


오늘도 너무 다른 두 세계의 소리는

함께 어울리지 못한 채,

그저 그렇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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