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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라 Mar 10. 2022

2.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만났던 선물, 소주

강남의 뒤뜰, 소주 Suzhou

내가 중국을 처음 만났던 때는 십 여 년 전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중국을 이상한 반농촌 국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보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서양에서 중국의 국력 발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국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언론이나 소문에서 말하는 대로 대충 중국에 대해 짐작했을 뿐이었다. 현대 중국에 관해서는 대체로 악담이 많았다. 아무래도 ‘공산당’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같은 동양문화권이다보니 부지불식 간에 내 상식 속에 스며들어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어쨌든 소주苏州라는 이상한 이름의 도시에 가기 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설렘은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 떠나기 위해 나 스스로 노력해 놓고 막상 중국으로 떠나게 되자, 한양에 있다가 유배지로 귀양 가는 선비라도 된 심정이었다. 간사하기 그지없는 마음이었다.      


저녁 비행기를 탄 탓에 내가 상해 홍챠우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완전히 밤이었다. 예약된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한 시간 정도 이동하는 동안 나는 컴컴한 야경 말고는 본 것이 없었다. 그날 나는 소주공업원구(苏州工业园区)의 작은 비즈니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첫 중국 풍경은 비즈니스 호텔 주변이었다. 그런데 나는 첫눈에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중국을 발견하고 놀랐다. 작은 샛강 주위에 아파트와 작은 공원이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늘어선 대나무를 보고 그 도시가 내가 살던 서울보다 확실히 낮은 위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말로 해놓고 나니 너무 심심한 표현 밖에 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나는 그 평범한 풍경에 큰 인상을 받았다. 너무 좋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였다.  갑자기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쳐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의 세포는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잊고 살았던 나의 옛 모습이었다. 시들어가던 화초가 물을 만나 다시 생기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소주성 안의 운하와 소주성 밖 공업원구에 있는 금계호金鷄湖의 야경


소주 공업원구는 90년대 개혁개방시기에 주로 싱가폴 자본과 중국의 합작으로 개발이 시작된 소주성 동쪽의 지역이었다. 중국과 외국의 합작회사가 많은 곳이어서 외국인들도 많이 살았고, 인공호인 금계호 주변은 현대 도시와 휴양지 느낌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중국 도시에 비해 부가 더 많이 모이는 지역이었다. 나는 공업원구에서의 생활에 만족했는데, 소주가 중국 도시에 비해 경제적으로 윤택해서만은 아니었다.

태호주변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열매인 양메이나 연밥 같은 것도 즐거웠고,  폴리프로필렌으로 포장한 공장에서 나온 작은 과자부터 야채, 과일 까지 모든 것을 저울에 달아서 파는 중국의 생활방식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음식을 어떻게 시켜 먹어야 할지 몰라서 중국 식당에 들어가지도 못 했지만 그래도 간신히 용기를 내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보기도 했다. 


하루는 꽃향기가 느껴지는 봄 밤에 나와 지인은 집 주위에 서양인들이 모이는 생맥주가게 앞을 지나고 있었다.  가게 안엔 커다란 티브이가 있었고, 서양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유럽 축구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날씨가 따듯한 지방이다 보니 봄가을엔 매일 저녁 가게 문을 다 열어 놓는 편이어서 가게 안의 사람들은 행인들에게 인사했다. 세상 걱정 없는 즐거운 분위기의 술집이었다. 소주의 공기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낙천적인 기운이 있었다. 같이 길을 가던 지인이 이렇게 말했었다.      


  “아, 나도 소주에 저런 술집 하나만 갖고 있으면 인생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술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이전에 한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아름다운 여행지는 어떤 곳일까? 뉴욕, 피렌체, 파리, 카이로, 알래스카, 발리? 자연이나 건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는 많다. 하지만 나에게 멋진 여행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고 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이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듯이. 나에게 소주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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