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뒤뜰, 소주 Suzhou
1. 여행이라는 사치와 허영
내가 여행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느낀 순간은 북경 후통(중국 북쪽에서 골목을 일컫는 말, 남쪽에서는 농, 농탕)에 있는 어느 미국인이 경영하는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였다. 일요일 오후를 북경의 햄버거 가게 안에 앉아 커피와 맥주 포테이토 후라이까지, 그 집에서 하는 메뉴는 모두 먹어보고 있었다. 나는 내 일생에서 제일 맛있는 햄버거와 피클을 맛봐서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내 인생의 제일 맛있는 꿔바로우를 서울에서 맛 볼 수도 있고, 내 입 맛에 제일 맞는 해장국을 뉴욕에서 맛 볼 수 있다. 나는 고정관념과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한다고 생각했다. 또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비슷하니까 인생을 더 단순하게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시절, 내가 여행을 떠났던 가장 큰 이유는 고독과 소외의 일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여행자에게는 혼자인 것, 서툰 것, 이방인의 태도로 사물을 보는 것이 어느 정도 당연했다. 나는 그런 여행자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 여행길에 나서곤 했다. 서툰 외국어로 낯선 사람들과 나누는 몇 마디의 이야기들은 대개 신상에 대한 얕은 대화였지만, 그 대화가 내 마음에 작은 위로를 준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모국어로 대화를 한다고 꼭 내 마음 속의 말들을 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보니 낯선 사람과 더 꾸밈없이 말을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여행일뿐, 여행자의 특권을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어김 없이 다가왔다. 그날의 점심 식사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먹는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공항으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일상을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시간이 꽤 흘렀다. 일상에서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하지 못 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터넷엔 해외에 머무는 사람들의 온갖 종류의 상세하고 세분화된 여행기가 늘어갔다. 나는 그런 여행기를 쓰는 사람들만큼 여행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답답한 여행을 하기 일쑤였었다. 내가 중국에서 느꼈던 감정들이나 내가했던 경험이 특별하다거나 의미가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나마저 여행기를 쓰는 것은 세상에 공해를 늘리는 일 아닐까?' 이런 푸념마저 했었다.
나는 그 동안 내가 여행에 쏟아 부었던 시간과 돈에 대해 생각해봤다. 낯선 도시로 일주일 간의 여행이다 보니 공부하고 알아볼 것이 많았다. 그 일주일간의 여행을 위해 나는 육개월 전부터 주말이면 인터넷에서 여행정보를 알아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돈 소비보다 시간 소비가 더 했다. 중국 전공자나 중국 관련 사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과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할까? 순수하게 좋아하는 감정때문이라고 해야할까?
누군가는 해외 여행에 대해서 ‘욜로’라는 달콤한 말에 취해 하는 과시적 소비라고 했다. 욜로는 ‘인생은 단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대비하기보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며 최대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소비지향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혹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것이 삶의 진정한 가치인냥 여기는 태도이다. 나는 '욜로'라는 유행어에서 위안을 얻고 작은 사치를 찾아 여행을 했었다. 그런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니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말이 더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여행 계획표를 짤 시간에 주식 공부나 부동산에 대해서, 세금 법률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올바른 소비태도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욜로라는 말은 참신하기는 커녕 철 지난 유행어처럼 생생한 느낌을 잃고 사람들의 대화에서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파이어족이 새로운 트렌드로 입에 오르내렸다. 파이족이란 돈 벌수 있는 사회 생활 초기부터 소비를 극도로 자제하고 최대한 돈을 모은 다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현업에서 은퇴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모은 자본을 이러저리 굴려서 은퇴 후에도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을 추구했다. 미국처럼 그래도 월세(rent)가 비교적 저렴한 나라에서 조차 젊은 직장인이 독립하지 않고, 렌트로 나가는 돈을 모으기 위해 부모 집에서 사는 젊은 직장인이 늘고 있다고 했다. 파이어족에겐 조직 생활에서 소명과 만족을 찾겠다는 생각이 꽤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았다. 돈을 모아 투자한 경험을 신앙간증하듯 털어놓는 시대가 와있었다. 하지만 나는 파이족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 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일상에서 여행이라는 틈을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욜로족도 파이어 족도 나와는 상관없었다.
소소한 행복이라니 가당찮은 소리였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되돌릴 수 없고, 후세에 성스럽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름은 안 남아도 술꾼의 이름은 전한다는 치기 대마왕, 이백의 말이 있지 않은가. 내 인생의 목표는 사치와 허영이었고, 해외여행은 내가 부릴 수 있는 치기의 최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