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극장 05 거인

습관성 허언증 회사원 N 씨의 영화

by 미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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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여기는 미완극장입니다.


아, 맞게 찾아왔나 보네요.


네, 다행이네요. 늦은 시간인데도 왠지 관객분이 오실 거 같아 문을 닫지 않고 있었거든요.


예, 반갑습니다.


그럼 하고 싶으신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게요. 여기에 적어주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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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셨으면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N: 예, 여기요.


아,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되신다구요. 얘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N: 아, 네. 처음에는 그냥 직장에서 꿀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러셨구나. 충분히 그럴 수 있죠.


N: 전 진짜 평범하고 별로 내세울 거 없는 사람인데, 회사 사람들 기준에 절 맞추려다 보니 이것저것 거짓말을 하게 된 거죠. 원래부터 이러지는 않았어요. 뭐 하나 사실대로 대답하면 또 거기에 대해 엄청 캐물으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사소하게 하나씩 거짓말을 하게 된 거예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엄청 작은 거라도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요?


N: 나중에 그 비슷한 얘기가 또 나왔을 때는 헷갈리는 거예요. 사실대로 말했으면 상관이 없는데 지어낸 거니까.


그때 뭐라고 했더라, 이렇게요?


N: 예. 무심코 사실대로 말했다가 예전에 말했던 거랑 달라서 난감했던 적도 있고요.


그럼 예전에 한 거짓말을 덮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되고, 그쵸.


N: 예, 맞아요. 내가 뭐 죄 지은 사람도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하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냥 솔직한 모습으로 산 적이 언제였지 생각하면 벌써 까마득해요. 이런 게 습관성 허언증인가 싶기도 하고.


힘드셨겠어요. 근데 사람들은 보통 대여섯 살이 되면 그때부터 거짓말을 하기도 한대요. 거짓말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N: 하긴 그렇죠. 그래도 여기 와서는 아직 한 마디도 거짓말을 안 했어요.


네, N 씨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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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씨에게 상영해드릴 영화는 김태용 감독님의 영화 <거인>이에요. <거인>은 집을 나와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지내는 열일곱 살 ‘영재’의 이야기예요.


N: 들어본 적 있는 영화 같기도 해요. 무슨 내용인가요?


주인공 영재는 어린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해 보이는 친구예요. 자기가 지내는 그룹홈에 계속 있으려고 그렇게 행동하는 거죠. 눈치도 빠르고, 이것저것 잘 챙기고, 어른들에게 살갑게 굴고요. 그런데 이면에는 또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어요.


N: 어떤 모습이요?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룹홈에 들어온 후원 물품을 몰래 가져다 팔기도 하고, 다른 친구가 누명을 쓰는 걸 보고도 모른 척하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그룹홈 원장님이나 신부님 같은 어른들에겐 모범생으로밖엔 보이지 않게 착실하게 행동하거든요.


N: 이 영화 주인공도 거짓말을 많이 하나 보네요.


네, 말하자면 그래요. 겉과 속이 다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거짓말에 능숙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에요. 그치만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영재를 비난할 수 있는 관객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N: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인가요?


좀 다른 의미에서 그렇죠. 영재는 아직 청소년이고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예요. 그런데 그 누구도 영재를 책임지려 하지 않아요. 삶의 무게를 감당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거든요.


N: 아… 다른 얘기지만 생각해 보니 저도 열일곱 열여덟 그 무렵부터 거짓말을 좀 했었던 거 같아요. 지금 돌이켜 보니 직장 생활에서 뿐만이 아니었네요. 그때도 물론 사소한 거였지만요.


아, 정말요. 어떤 면에서 그러셨어요?


N: 시험, 성적, 인간관계 그런 부분에서 은근히 거짓말을 많이 했었던 거 같아요. 부족한 저를 감추려고 선생님한테, 부모님한테, 친구들한테 조금씩 다 다른 제 모습을 꾸며냈었던 거예요.


뭔갈 숨기기 위해 시작했던 거짓말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되짚어 가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감추고 싶은 결핍이 있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기를 좀 꾸며내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그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전에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N 씨는 대단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N: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좀 민망하네요.


정말로요. 이젠 N 씨가 본인을 포장하던 껍데기를 조금 내려놔도 좋을 때가 온 거 같아요. <거인>의 영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 자신을 꾸며내기에 급급하지만, 그럼에도 꾸며내지 않은 영재의 모습을 소중하게 봐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N: 영화를 보다 보면 거짓말을 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나 봐요.


네, 영재가 무거운 포장을 좀 내려놓고 조금이라도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길 간절하게 바라게 돼요. N 씨도 그동안 이런저런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힘드셨겠지만, 솔직한 N 씨의 모습을 털어놓아도 그걸 초라하지 않고 따뜻하게 봐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N: 그랬으면 좋겠네요.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연습을 해봐야겠어요. 솔직해지는 연습이요.


네, 그럼 영화 재밌게 보세요. 미완극장에서는 영화 티켓 뒷면에 떠오르는 책 구절을 하나 적어 드리거든요. 여기 티켓이에요. 혹시 털어놓고 싶은 일이 또 생긴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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