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시니어가 시작되는 55세부터다. 시니어 나이가 되던 해 한 개의 직업을 그만뒀다. 예전보다 시간이 많다 보니 집안에 쓰지 않거나, 더 이상 쓰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정리정돈 잘한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웰빙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면, 이제는 웰다잉을 위해 몸도 마음도 그리고 갖고 있는 물질도 느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직업으로 정신없이 살았고,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도 본인들이 해결하는 세월이 되었기에 이제부터는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 비움이 필요했다. 마음보다 비우기 쉬운 물건으로 내 미니멀이 시작되었다.
우선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몇 번 써보지도 못한 정수기나 각종 주방기구들, 날이 삐뚤어진 칼과 가위 그리고 숟가락이 넘쳐났다. 이민 왔다고 선물 받은 각양각색의 식기들은 이미 낡아서 흰색만 빼고 모두 버렸다. 냄비와 프라이팬은 또 왜 이리 많고 그것보다 뚜껑은 더 많은 건 참 아리송하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들어온 컵과 텀블러 그리고 여행지에서 산 컵들도 정리대상에서 빠질 순 없었다. 제 역할을 못하거나, 충분한 역할을 끝낸 고장 난 것들이 생가보다 많았다. 음식솜씨 없다 보니 연장탓하며 마련한 불필요한 주방기기를 빼고 나니 부엌에 빛이 난다.
다음은 서랍장과 옷장에 켜켜이 쌓아 놓은 옷들을 꺼내고 보니, 산더미 같은 그것들을 한 번이라도 더 입어 보겠다고 거울 앞에서 반복적으로 입어봤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때마다 유행 지나면 또는, 살이 빠지면 입겠다고 모아둔 것들 중 10여 년을 입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1년 이상 안 입은 옷들, 짝 없는 양말을 정리하니 그 양이 엄청났어도, 구제품에 갖다 줄 상태가 아닌 것이 더 많아 할 수 없이 정리했다. 이젠 한눈에 봐도 정갈해진 옷장으로 기분이 좋아져, 앞으로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릴 계획까지 다짐하게 되었다.
책꽂이의 먼지가 쌓인 읽지 않고 방치된 책, 안 쓰는 공구, 아이들의 장난감과 학교에서 만든 공작품 그리고, 수북했던 신발장을 정리를 했다. 고장 나거나 더 이상 쓰지 않는 가구들까지 정리하다 보니 사방에서 돈을 긁어모아 작은 아파트에서 타운 홈으로 이사 왔던, 첫 집을 장만했을 때처럼 너른 운동장 같아졌다.
첫 집은 여유가 없어 가전제품 하나 없어도, 내 집이라는 흥분과 앞으로 채우면 된다는 기쁨으로 좋았다면
정리된 지금은 이제야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필요 없이 사 모으는 그때도 나름 행복했다면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는 지금도 참 좋다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 욕망이 있기에 진정한 내려놓음, 진정한 비움 그리고 진정한 미니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전화기 속 연락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관계의 미니멀을 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나는 미니멀 라이프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만은 연락처들이 타의든 자의든 갖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활동적인 사람이며 나름 유명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의 하루가 잔잔해지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물질의 간소화와 마음의 간소화가 만나야 행복한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요즘이다. 이젠 나 자신 안에 웅크려 잠자는 아픔들, 욕망들, 억울함들, 미안함의 미니멀을 해야 한다. 이것들은 감정소모가 필요하기에 물건을 버리듯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