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손꼽는 추억 중엔 바닷가의 추억이 많이 있다. 첫 물가의 추억은 50년도 더 지난 꼬맹이 시절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갔던 많은 계곡도 좋았지만 뚝섬에서의 물놀이가 아직도 생각난다. 돗자리에 옹기종기 앉은 오 남매 앞에, 엄마가 밤새 만든 음식을 먹으며 놀던 장면. 우리가 음식 먹을 때 흐뭇해하는 부모님의 모습. 정신없이 놀다가도 자주 엄마, 아빠를 찾다 보면, 부모님의 시선은 언제나 나에게 있었다. 두 손을 흔들던 모습은 내가 성인이 될 때 필요한 정서적인 안정감을 충분히 받은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친구들과 부산 해운대에서 텐트를 치기도 했고, 울릉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탔던 기억도 있다. 옥천해수욕장 근처의 지인 집 앞마당에 놓인 평상에 누워 친구들과 별을 보던 그 밤은 황홀했다. 평상시에도 별 보는 걸 즐겼지만, 그 바닷가의 별들은 대단했다. 오 남매가 가정을 꾸민 후 가족모두 부모님 모시고 동해를 갔던 그때. 온 가족이 처음 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여름날 바닷가. 어린 조카들의 노는 모습, 음식을 끊임없이 만들며 얼굴에 미소를 띠던 엄마, 자식들과 손주들 보는 것에 흥분된 아빠의 얼굴은 자녀로서 가장 큰 효도를 했던 장면이 아닌가 싶다. 다투지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노는 모습을 좋아했던 부모님에게, 그 후로 더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바닷가를 찾아갔던 많은 기억 중 최고는 막내가 유치원생일 때 겪은 일이다. 한낮의 수영을 마치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려있던 백사장. 막내와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수많은 폭죽이 하늘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고 내려올 땐 얼굴 위로 떨어질 것만 같았던 그 날밤. 나와 막내는 무서움에 소리를 지르기보다 신기함과 아름다움에 취했던 그날이 참 좋았다. 아이들 모두 성인 되어 바닷가를 갔을 땐, 비치 의자에 누워 책을 보거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또는 모래 속에 누워 잠을 자면서 바닷가를 음미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것에, 같은 곳에서 휴가를 즐긴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이젠, 각자의 생활영역이 다른 세월이 되고 보니 온 가족이 모여 며칠씩 바닷가에서 여름을 보내는 건 어렵다. 나도 이제는 바닷가 보다 골프장이 편하다 보니 서로의 휴가에 존중하게 되었다. 각자 알아서 잘 논다는 게 가족과 멀어지는 것이 아님을 모두 안다.
얼마 전 혼자 여행을 갔다 왔다. 아이들이 빠지니 나만의 놀이에 충실할 수 있었고, 나만을 위한 휴가를 갖다 보니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이런 나의 여행에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건 모시고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일 것이다. 나 또한 아이들이 각자의 친구들과 또는 각자 여행을 갈 때면 특별 용돈을 주는 편이다. 여행에서 얻는 교훈은 내가 겪어보니 크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주변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것에 많은 보탬이 된다. 생각하라, 떠나라 그리고 충분히 즐긴다면 내가 일하는 보람도 더 느끼지 않을까. 북적이는 밤바다를 보면서 나는 젖은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고,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에 같이 왔다 갔다 놀이를 하다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있는 이 순간이, 옛 추억을 떠오르는 이 순간도 언젠가는 또 다른 추억이 되기에, 동행자가 있든 혼자 있든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한다.
같은 곳에 와도 느끼는 감회가 다른 것을 보면,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해 즐겼던 것 같다. 비록 성년이 된 아이들과 자주 다닐 수 없어 서운한 점도 있지만, 비로소 나 자신만을 위한 휴가를 이제라도 갖게 된 건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휴가를 즐긴 이번 여행은 아마도 바닷가의 추억 중에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발 속의 모래가 질펀해도 아랑곳없이 하늘을 보던 그 밤은 내가 늘 꿈을 꾸던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같은 별도 이상하게 바닷가에서 보면 더 아름답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옥천 해수욕장에서의 별처럼 나를 비추고 발등에 몰려오는 밀물의 거품 또한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늘과 땅 그사이에 있는 나 자신이 빛을 받고 있는 이 장면이 참 좋다. 머리에선 별이 반짝이고 발등에선 파도가 반짝이다 보니 내 몸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마음도 반짝인다. 이렇게 마음도 반짝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되면 좋겠다. 내 삶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이 바닷가의 밤이 나만의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