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그 틈으로도 정이 흐른다.
일 년에 두 번뿐인 제사 일지라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제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앞으론 먹지 않을 음식과 제사 의식에 변화를 줄 거라는 어미의 말에 아들은, 늘 힘든 엄마의 노동에 본인들도 미안했다는 말에 더 용기를 냈다.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설음식만 장만해도 덜 미안하고, 덜 서운했다. 잘 먹지 않는 제사음식 대신, 명절 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산소 가야지", "오늘이 기일이야"라는 말도 삼갔다. 각자 시간이 허락될 때, 또는 마음이 동할 때 언제든 가면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 모임에서 맛난 음식 먹으며 정답게 지내는 남은 가족의 모습이 진정한 제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신년에도 일을 가야 했고, 막내와 둘째는 친구와의 약속을, 큰애는 전 날 망년회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 다 같이 새해 아침식사를 하진 못했어도, 시간 맞는 점심이나 저녁때 모두 모여 설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편하다.
설 때면 흰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아이들은 먼저 나에게 절을 한 후, 서로에게 절을 하거나 포옹하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다정하게 또는 살가운 조잘거림과 웃는 모습을 보는 건 행복이다. 아이들이 문득 묻는다. "엄마 언제까지 우리가 세뱃돈을 받아요?". 너희도 직장을 갖았고, 또 엄마가 60세가 넘었으니 이젠 엄마에게도 주면 좋지 않을까?, 물론 엄마도 매년 세뱃돈은 줄 거야!.
둘째가 말한다 "엄마 그럼 내년부터는 내가 엄마에게 세뱃돈 줄게요, 잊어버리면 리마인드 해주세요." 라며 웃는다. 이쁘다.
출근하는 내 앞에 큰애는 세뱃돈이 든 봉투를 이제는 안 줘도 된다며 나에게 돌려줬다. 점심시간쯤 막내에게서 사진 두 장이 도착했다. 그 사진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시키지 않았는데 친구와 헤어진 후 산소에 들려 아빠에게 인사하고 왔다는 내용이다. 이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간 산소이기에 뭉클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이번엔 둘째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목에 산소에 들려 아빠에게 인사했다는 문자가 왔다.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이, 진정한 제사가 아니겠는가.
지금 보다 더 물러나야 하며 홀로 서기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드는 새해다. 이제 내가 변할 차례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어야 한다. 부모 자식사이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거리를 둔다고, 틈을 준다고 정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은 더 자유롭게 흐르고 마음의 한 발만 옮겨도 언제든 마음의 온기가 닿는 거리에 서로가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아이들도 아는 나이다. 마음의 거리는 외면이 아니라 더 깊어진 믿음과 사랑이라는 걸 그들은 알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기억에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엄마, 그러면서도 가족을, 자기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또한 자주 이쁜 옷을 입고, 자기 계발에 게으르지 않으며, 삶을 사랑하는 자존감 높은 엄마로 기억되면 좋겠다. 집안의 짐들도 틈과 거리가 필요하다. 아끼느라 쓰지 않은 물건, 버리지 못한 물건을 매일 아침 정리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사용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해줄 나의 몫이다. 이런 모습을 나의 부모님도 보시면 흐뭇해하실 것이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부모님에 대한 나의 제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