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천일홍 )
15년 동안, 살기 시작한 첫날부터, 나는 매일 이사를 꿈꿨다. 새집임에도 정이 들지 않았다. 최근 큰아이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어, 생각만 했던 이사의 꿈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선 묵은 짐을 정리해야 했다. 60년 세월 흔적이 담긴 부부 사진첩과 15년 동안 풀지 않은 이삿짐이다. 10개가 넘는 앨범보다 선택받지 못한 채 비닐백 속에서 잠자고 있는 사진이 더 많았다. 단지 사진을 정리하는 것인데, 사람을 버리는 것 같은 마음에, 정리가 자꾸 미뤄졌다. 부부의 성장기가 고스란히 담긴 앨범 속엔, 이미 세상에 없는 가족도 많아 세월의 무상함을, 그 무상함 속에서도 버틴 대견함을, 아직도 그리운 모습들을 내 손으로 정리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다. 사진마다 추억이 소환되어 울면서 버리고, 웃으면서 버리고, 색이 바래 버렸다. 또한 비슷한 장면이 많아 버리는 갖은 이유 붙였다. 드디어 내 몫의 앨범 한 권이 되었다. 이 한 권이면 훗날 나의 장례 때 사용할 슬라이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할 수 없이 이사했던 그때, 할 수 없이 포장된 그때의 풀지 못한 짐들을 풀면서 그것들과도 정면 대립했다. 너무 무심히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포장 속에서 숨죽인 그 물건들의 쓸모 있음에 상관없이 세월의 묶임을 풀어줬다. 손때 묻은 그의 물건들이 손때 묻지 않은 세월이 더 길었다며 바스락거렸고, 그 소리에 눈물이 쏟아졌다. 기억은 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물건에도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이 지내온 삶 속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의 묶인 아픔도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그 세월 동안 나 자신도 외롭고, 힘든 마음을 그 포장된 물건 속에 넣고 잊은 척한 것이다. 정리 안 된 비닐 속의 사진과 풀지 못한 짐 속의 세월은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그 속에서 답답하지만, 조용하게 나를 기다린 것이다.
15년 전 그 이삿짐을 다 풀 수가 없었다. 투병 중이었던 가장에게 경제적 무게를 덜어주면 투병에만 힘쓸 것 같았다. 그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사를 결정한 것이다. 살려야 된다는 마음과 살아야 되는 마음을 공유해야 했다. 투병에 실패한 그는 결국 이 집이 아닌 하늘로 이사 갔다.
그 없이 이사 온 집엔 방이 하나 모자랐다. 그 문 없는 방, 지하실을 큰애가 쓰겠다고 자처했다.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저렸다. 내 품을 떠나기 전, 꼭 그 아이에게 예전처럼 독방을 주고 싶었다.
이사가 무조건 기분 좋은 설렘을 주진 않지만, 긍정적인 설렘을 같이 겪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이 최상이라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힘든 내색은 안 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같이 애썼다. 웃어도 되고, 좋아해도 되고, 그리고 혼자 우뚝 서도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혼자 우뚝 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또한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 문 앞에 집매매푯말이 세워졌다. 주택담보대출 부담으로 이사 가야 했던 그때, 집은 팔리지 않고 상의할 곳도, 돈도, 기댈 언덕 하나 없어 막막하던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상황이지만, 그래도 두렵다.
오래된 사진과 묵은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집을 물색하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왜 일을 해야 하고,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배웠을 것이다. 될 수 있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오래된 사진과 묵은 짐들이 사라져도,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도 살아지는 것이 삶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긴 세월 속의 사진과 물건은 단지 추억이다.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들이 아픔으로 기억되든, 기쁨으로 기억되든 그 속에서도 부식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우리를 지켜줬다고 믿는다. 그것은 사랑이었음을 나는 알았는데, 아이들도 알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요즘 자주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짐작이 간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