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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우 Mar 29. 2022

부검실 참관기

죽음에 대하여

나는 의대의 해부학교실 소속이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인지신경심리학자이지만, 지도교수님께서 human in vivo와 ex vivo*를 동시에 해보면 어떻겠냐면서 부검실에서 fresh cardaver**의 뇌 조직 샘플을 얻어오는 일을 맡아보기를 제안하셨다. 박사 과정을 막 시작하여 열정 넘치던 2018년의 나는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며 조직 샘플링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월요일 아침 일찍 부검실에 따라갔다. 그 당시 내가 일하던 건물의 바로 옆 건물인 교육관 3층에 부검실이 있었다. 실제 뇌 조직은 이미 많이 봤기에, 조직을 얻어오는 것이 크게 어렵고 무서운 일은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갔으나, 가운과 머리 망을 착용하고, 신발을 갈아 신고 부검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의 준비와는 상관없이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 켠에는 하얀 천으로 덮인, 그날 부검할 시신들의 침대가 쭉 놓여 있고, 가운데에 있는 부검대에서 부검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옆에 있는 보조 부검대 앞에 서 있다가 뇌 조직을 꺼내 주시면 필요한 부분을 슬라이싱하여 샘플을 만들어오는 일을 보조하게 되었다. 부검실을 들락날락하면서 뇌 조직 샘플링만 쏙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보조 부검대에서 내내 대기했기 때문에 한번 가면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몇 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과정을 전부 보게 되었다. 단순히 보는 것뿐이 아니었다. 죽음의 냄새와 소리, 공기와 분위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불과 2-3미터 앞의 광경을 보기가 어려워 고개를 숙이고 잔뜩 긴장한 내게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께서 웃으며 말을 걸으셨다. 내 백그라운드가 다른 학생들과 달리 심리학인 것을 아시고는, 뇌 조직 샘플만 얻는 것뿐 아니라 부검실에서 각 시신의 히스토리를 알고 참관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부검을 시작하기 전에 시신의 인적사항과 사건의 경위 등을 법의학팀 선생님들이 브리핑하시고 시작했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는 선생님들이 나누는 말씀을 귀담아듣고 고개를 들어 관찰하기 시작했다. 네다섯 분 정도 되시는 부검팀 선생님들이 시신 한 구를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5분에서 2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주로 변사체의 부검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러 양상을 목격했다. 조금 창백하지만 거의 자는 것과 같은 이의 부검 과정을 볼 때엔, 한지 오래된 것 같지 않은 선명한 네일아트와 패디큐어가 눈에 들어왔다. 저분은 얼마 전 손발톱 관리를 하실 때에 본인이 머지않아 이렇게 부검대에 오를 줄 아셨을까? 삶과 죽음의 간극이 이토록이나 좁았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부검이 진행되었고, 거의 온전해 보이는 사람의 가슴뼈와 두개골이 잘리고, 장기들이 꺼내졌다. 뇌가 적출되어 내가 서있는 보조 부검대에 올려졌다. 메스로 필요한 부분을 잘라 샘플 조직을 만드는 동안, 빠르게 부검이 마무리되었다. 부검을 위해 열었던 부분들을 봉합을 하고 부검대에서 다시 침대에 옮겨졌다. 그리고 그다음 침대에 있던 시신이 부검대 위에 올랐다. 다양한 시신들과 다양한 사인들이 있었다. 부검실에서의 ‘죽음’은 너무 쉽고, 일상적이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월요일 아침에 부검실에 갔다. 어느 날은 부검실에 도착하니 거의 백골에 가까운 시신의 부검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직 샘플을 얻을 수가 없어 유리창으로 연결되어있는 옆에 딸린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부검 대상의 인적사항과, 주소, 어디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등이 적혀있는 서류가 있었다. 잠깐 읽어보니 연락이 안 된 지 2~3년이 지났고, 건물에 수도였나 가스였나 어떠한 문제로 인해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거의 백골로 발견된 분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고 있다가 그 시신의 부검이 끝나고 다음 부검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부검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교수님이 나오셔서 부검실 입구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유가족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렸다. “타살 가능성은 없고요-“ 유리창 너머로 봤다고 또 나와는 아주 멀게 느껴져 아무렇지 않게 관찰하고 있었는데 다섯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가족을 지나치는 순간 저 백골도 가족이 있는, 한때는 피와 살이 있던, 살아 숨쉬었던 사람이었고, 죽었다. 라는 사실이 순간 나를 확 덮쳐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부검실에 다녀온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내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그날은 입맛이 없어 밥도 먹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 어느 날 부검실에서 뛰쳐나간 이후로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자꾸 캄캄해져 구토를 하거나 실신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부검실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가까이의 사랑하는 생명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많지는 않기에, 죽음은 나에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어떤 추상적인 관념에 가까웠다. 부검실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직관적인 죽음 그 자체를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죽음’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하겠지만 글쎄, 남겨진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누군가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 부재로 인한 삶의 변화와 보험/재산 분배 등의 행정적, 법적 절차들이 있을 테고, 죽음의 당사자에게는 어떠할까, 죽어가고 있거나, 본인이 죽음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어떻게 느껴질까?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어떠한 이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삶의 이면은 죽음이기에, 어떻게 살 것인가만큼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 이전에 어느 강의에서 배운 내용인데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가장 좋지 않은 태도로 부정적인 삶에서 벗어난다고 받아들이는 탈출적 수용이 있고,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마지막 결과로 받아들이는 중립적 수용, 그리고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적 믿음과 관련된(eg.,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접근적 수용이 있다. 나를 포함하여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동물들에게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기에 미래에 내가 죽게 될 때까지 남겨진 자로서 수많은 죽음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부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죽음의 순간, 떠나는 이에게도 남겨지는 이에게도 두려움과 슬픔을 넘어선 수용의 단계가 존재하길. 열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예감되었던 탄생만큼 죽음 또한 모두에게 찰나라도 그럴 수 있길.



*in vivo: 세포 내에서, 주로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 연구를 뜻함

ex vivo: 세포 밖에서, 유기체 밖에서의 세포 연구를 뜻함 (조직 염색 등)

**fresh cardevar: 해부 실습으로 쓰이는 일반 카데바와 비교하여, 포르말린 등의 고정액의 영향이 덜한,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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