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믹스커피 Jul 20. 2022

키즈카페에서 시스루를 상상해보기

글감 : 시스루

 오늘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하원 전까지 사무실에 일을 보러 다녀왔다. 하원 시간이 다가올수록 업무 효율은 높아져가고 있다. 딴짓을 통한 잉여시간은 창의력을 높여주지만, 이렇게 하원 시간의 압박이 오는 압박 시간은 일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오늘 촬영에 입은 정장 쟈켓 8벌을 스타벅스 캐리백에 넣고 지하철로 1시간 반을 3번 환승을 하고 갈 생각을 하니, 새삼 그냥 버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들었다. 하지만 이 많은 정장 쟈켓을 다시 살 생각을 하니까 나 하나의 노동으로 더 이상의 자본의 잠식을 막아보자는 결론을 냈다. 일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면서 하원 동선을 짜 본다. 둘째 어린이집부터 하원 시키고 첫째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동선을 계획했으나, 이 짐을 들고 걷는 거리는 걸어갈수록 속도가 줄어들 것이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전략적인 선택으로 첫째 유치원 하원 버스를 타지 않고 직접 데리러 가겠다고 담임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놓는다.


 1시간 뒤 지하철이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길을 나서본다. 문득 싸한 느낌이 들어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문자를 아직도 확인하지 않으셨다. 이렇다면 하원 버스에 태워서 보냈을 텐데. 지금 시간은 아이가 아파트 앞에 도착할 시간이다. 이럴 수가. 마침 버스 아저씨가 전화 오셨다.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유치원으로 다시 회차를 부탁했다. 아이는 어리둥절하게 내려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하겠지.  급해진 마음에 둘째 어린이집으로 내리 달려간다. 하필 정장 블라우스를 입은 터라 몸은 땀범벅이 되었고, 캐리백은 머리에 이고 걷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남들이 보는 눈보다, 이 캐리백의 무게를 어떻게 최소화시켜서 내가 걸어가는 속도를 높이냐이다. 둘째를 부랴부랴 하원 시키고 나서 첫째의 유치원으로 향한다. 예상대로 입이 댓 발로 나와서 울먹이며 토라져있다. 미리 약속되지 않은 상황의 변수에 익숙하지 않은 첫째는 마음이 상해있다. 마음을 풀어주려고 어떤 걸 하고 싶냐고 하니 놀이터에 가자고 한다. '엄마는 이미 너무 많이 걸은 것 같은데.'라는 말을 욱여넣어본다. 아직 말은 잘 못하는 둘째가 '슝슝 놀이터 갈래'라고 외친다. 이미 눈치챈 거 같다.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아들들을 보며, 이런 더위에 놀이터에서 2시간 동안 모자도 없이 정장을 입고 대기하다가는 내가 먼저 죽어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만료를 앞둔 키즈 키페 포인트가 생각났다. 지금 모두가 행복한 선택은 바로 이곳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대형몰의 키즈카페.


 휘황찬란한 대형몰의 키즈카페는 자본의 힘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디어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조 놀이와 액티브한 챌린지들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캐릭터와 전자식 미디어가 골고루 섞여서 지루할 틈을 없게 만드는 곳. 가장 중요한 것은 에어컨이 빵빵한 곳이어서 내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이 글쓰기 모임의 글 마감일이란 게 생각났다. 하필 오늘의 주제는 '시스루' 입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주제를 보며 생각해본다. 


 아이가 가져오는 모형 과일과 그릇들의 소꿉놀이를 해보며 여기에서 시스루를 입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여기는 몰디브일 것이다. 아이가 주는 소꿉놀이의 나무 잔이 논알코올 모히토로 바뀐다. 맞아, 상상만으로도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키즈카페 이지. 아이가 편백나무 놀이 공간으로 손을 이끈다. 네모 모양의 나무 덩어리들이 가득 찬 곳에서 포클레인으로 편백나무 조각들을 담아보고 있다. 편백나무에 살짝 발을 담그자, 몰디브의 하얀 모래가 떠오른다. 마치 모래 안에 발을 넣은 것처럼 낯선 감각들이 발을 간지럽힌다. 그렇게 몰디브의 모래 안에서 놀고 있다가, 첫째가 나를 이끈다. 이제 여기는 네온사인과 함께 하는 방방이 구간이다. 엄마도 같이 뛰어보라는 말에 손을 이끈다. 어른은 들어갈 수 없다며 거절하면서, 마치 타국의 이방인이 건네는 댄스 청혼을 거절하는 듯한 묘한 승리감에 도취해본다. 핑크퐁 음악을 배경 삼아서 점프하는 모습을 보며, 몰디브의 이국적인 음악이 오버랩된다. 나도 시스루를 입고 마음껏 뛰고 싶다.


'딩동, 000 어린이의 놀이 시간이 5분 뒤에 종료될 예정입니다'


몰디브에서 다시 키즈카페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키즈카페에서 현실의 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주차비 추가금을 안 내려면 30분 안에 출차를 하기 위한 새로운 모험을 떠나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가방이 말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