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출산 휴가의 시작

세상이 바뀐 걸까 내가 바뀐 걸까

by 믹스커피


출산휴가의 괴담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차이점은 의무와 선택의 차이뿐이 아니었다. 개시일의 기준점이 달랐다. 그걸 왜 그렇게 따지나 싶었는데, 출산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니 그 날짜 하루에 따라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날짜 하루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라서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출산휴가의 개시일은 출산일을 기준점으로 하고, 그 외에는 육아휴직기간에서 소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출산이 임박해서 바로 출산휴가를 사용하는 용자도 있고, 출산에 여유를 두고 들어가서 빨리 나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총 사용하는 기간은 동일하나 애를 낳으러 가는 입장에서는 어느 시점에 휴가를 쓰는 것이 가장 최선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가 많았던 것이다. 육아휴직의 총기간에 대한 경매가 끝나고 나니 이제는 시작 시점에 대한 조절이라니. 정말 이 협상의 끝은 어디인가 싶지만 이 또한 무엇이 최선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나의 휴직 일정에 맞춰서 업무 인수인계가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언제 들어갈지가 중요하다.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4살 아이를 키우는 선배가 애가 뱃속에서 나오면 그 뒤로는 자기 시간이 없다며, 그리고 자연분만은 예정일이라는 게 의미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예정일보다 미리 휴직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자, 출산일 임박 파의 선배가 출산일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가진통이 왔을 때 주간업무보고 메일까지 보내고 저녁에 산부인과 가서 출산을 했다는 영광스러운 출산휴가 성공기를 들려주며, 나중에 늦게 나오는 게 아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고 출산예정일까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했다. 정말 겪어보지 않는 출산이니 카더라 소식은 많지만,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결정인지를 모르겠다. 온전히 결정에 대한 책임도 내 것이고, 정답이 없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뒤이어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게 그런 것인데 말이다.


낯선 오전 9시의 풍경


점점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3시간의 대중교통 출퇴근길이 벅차기 시작하고, 주변에서도 이제 배가 터질 것(?) 같다고 하며 출산일까지 버티는 용자는 못되겠다고 선언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출산 예정일 3주 정도 앞둔 시기로 나의 출산휴가는 시작되었다. 휴가가 시작된 첫날,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떴지만 강제로 재취 침에 들어갔다. 휴가의 오기랄까 뭔가 쉬어야 한다는 강한 압박 때문인지 침대 안에서 자고로 오전은 뒹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답답해진 침대를 벗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밖을 나섰다. 오전 9시의 풍경이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결혼을 하며 서로 자취를 하던 남편과 내가 처음 신혼집을 마련한 곳으로 둘 다 연고지가 없는 낯선 동네였다. 아침 7시 출근에 저녁에 집에 오면 8-9 시인 평소의 출퇴근의 루틴, 그리고 주말이면 늦잠과 근처 가게에서 외식이나 야외 드라이브로 보낸 신혼의 일정으로는 동네를 온전히 느껴볼 수가 없었다. 새삼 1년 넘게 살았던 동네가 새롭게 보였다.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등원하는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기도 했고, 초등학교 앞의 신호등을 지날 때에는 녹색어머니회에서 나와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나올 아이가 생기니 이런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은 어떤 곳으로 보내는 게 좋을까, 학교가 근처에 있었던 곳이었구나 여기에 계속 살면 아이 키우기에 좋겠다 같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세상이 바뀐 것인가, 내가 바뀐 건가.


태교 중에 읽었던 ‘아가 마중’이라는 책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되고 나니 길에 지나가며 보이는 보도블록의 깨진 틈도 가로등의 어두운 빛도 보이기 시작하게 된다는 구절이 있다. 임신을 하며 엄마가 되고 부모가 된다는 것도 이렇게 같은 풍경도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다. 평소 핸드폰을 하며 무심히 지나가던 지하철역도, 임신을 하고 나니 계단이 이렇게 많았구나를 처음 느끼게 되었다. 빠른 걸음으로 환승 기차가 도착할 때를 맞추기 위해서 뛰어다니던 곳에서 나 혼자 슬로 모션으로 걷게 되었을 때, 그제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느린 걸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쁜 사람들의 어깨 틈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 똑같은 회색 벽이 가득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는 ‘00로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게 맞냐?’고 몇 번이나 물을 수밖에 없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마음이 청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내 마음은 지금 저 앞에 가고 있는데, 내 걸음은 느릿느릿 거북이 마냥 굼뜨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몰랐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가 나오고 나서는 24시간 돌아가는 비상 체제가 되면서 더 실감이 났다. 가끔씩 업무에 대해서 묻는 후배의 전화에도 예전에는 5분이면 해결할 일을 아이 기저귀 갈고 처리 잠깐 하다가 수유할 시간이 되어서 또 잠깐 하다가 보니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시간도 늘어나게 되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니 황급히 끊어버릴 수밖에 없는 회사 사람들에게도 미안해서 문자로 남겨주면, 컴퓨터 켜서 관련 파일 어디에 있는지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비밀번호도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총무팀에게 sos를 하는 웃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생겨났다. 새벽 수유하다 보니 낮에도 쪽잠을 자다가 깨길 반복하다가도 이사를 했는데 내 책상 위에도 사람이 있는 것처럼 깨끗하게 정리해놨다고 문자를 보내주는 후배를 보며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런데 고마운 만큼 두려움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컴퓨터 비밀번호도 생각이 안 나는데 나는 예전 같을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최대한 그러고 싶었다. 그래야 나 다음에 휴직을 쓰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몰랐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 꼭 깨고 싶은 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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