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날
가끔은 이유 없이 멍해지는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머릿속으로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손은 키보드 위에 머물고, 창밖만 한참 바라보다가 시간만 흘려보낸다.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다가, 다시 멍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멍한 날도 필요한 법이다. 항상 전력 질주만 할 수는 없다.
숨을 고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멍해 있는 동안 마음은 천천히 제 속도를 되찾고, 무심코 스쳐간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을 채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복잡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다시 걸어갈 힘이 조금씩 생긴다.
멍한 날은 삶의 쉼표다. 계획 없이 흘러가는 하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시간. 그런 순간이 쌓여야 우리는 다시 의미 있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 모든 날이 빛나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흐릿하고, 어떤 날은 공허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 날들까지 모여야 비로소 우리의 시간이 완성된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멍한 하루를 보냈다고 해서,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멍한 시간 덕분에 우리는 다시 나를 돌아보고, 내면 깊숙한 곳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조용한 바람 소리,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 떨림 같은 것들을.
오늘이 멍한 날이라면, 그냥 그렇게 두자.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애쓰지 말고, 흐르는 대로 하루를 받아들이자. 멍한 나도, 조용한 나도, 모두 나 자신이니까.
살다 보면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야 할 날도 오겠지만, 그때를 위해 오늘은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멍한 날도 있는 거지. 그것 또한 삶의 일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