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책 두 가지 모두 좋아한다면

알코올과 작가들

by 미수
와인이 주는 엄청난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자 누구인가? 추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슬픔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스페인에 성을 짓지 못한 걸 후회하는 모두가, 즉 요약하자면 '모든 사람'이 포도나무의 섬유질 속에 숨은 신비로운 신에 의지한다.
-샤를 보들레르
p.22


그동안 음식과 작가를 엮은 책, 소설 속 음식을 소개하는 책은 많이 출간되었으나 ‘작가와 술을 엮은 책’은 드물었다.이 책은 술의 역사와 그에 얽힌 작가와 일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좋아하는 거(술) + 좋아하는 거(책) = 진짜 좋아하는 거라는 결론으로,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인, 맥주, 위스키, 진, 보드카, 압생트, 메스칼•테낄라, 럼 챕터로 구분되어 있고, 각 술에 얽힌 작가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술의 제조 방법과 어떤 작가가 어떤 술을 즐겨 마셨는지, 제인 오스틴이 직접 양조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럼’이라는 단어가 70번 이상 언급된 다는 사실 등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귀여운 일러스트가 담겨있는 책이다.


바이런의 해골잔

작가들의 일화에 덧붙여 어떤 잔으로 마셨는지까지 설명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잔은 바이런의 해골잔이었다. 이것은 해골 모양의 잔이 아니다. 진짜 사람의 두개골 잔이다. 심지어 바이런은 이 해골의 양쪽에 시까지 지어 새겨 넣었다고 한다.


첫 잔을 마시면 모든 게 네가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 두 번째 잔을 마시면 영 바라지 않던 것처럼 보여. 그러다가 마침내 모든 게 있는 그대로 보이고 말아. 그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지.
『오스카 와일드가 스핑크스에게 보내는 편지: 작가에 얽힌 추억도 함께』
p.141


고흐가 이 술을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가설이 떠도는 병 속의 작은 악마, 압생트. 한 때 대부분의 국가에서 판매 금지되었던 사실 덕분에 더 유명해진 술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챕터다. 이 술을 먹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구멍이 뚫린 숟가락 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물을 떨어트려 녹은 설탕물을 섞어 마시거나, 각설탕에 불을 붙여 녹은 설탕물을 섞어 마신다. 이렇게 하면 설탕이 압생트의 높은 도수를 희석시켜 준다고 한다.



​대마, 아편, 술 담배가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맛이 있어서도, 즐거워서도, 기분 전환이 되어서도 아니다. 그저 양심의 요구를 외면해야 해서 그런 것이다.
「왜 사람은 스스로 얼빠진 상태가 되는가」, 톨스토이
p.109


책 속 대부분의 작가가 술을 사랑하고 즐겼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 톨스토이는 "보드카를 독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소작농을 억압하기 위한 전제 정권의 유익한 도구로 보았다. 그는 1887년 반주취 연맹이라고 하는 금주 단체를 설립"(p.109)했을 정도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힘들 때 술을 마시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을 찾는다. 톨스토이는 그런 행동을 양심의 요구를 외면한다고 보았다. 톨스토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술을 마신다고 해서 해결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술을 사랑하지만….

헤밍웨이의 블러디 메리

책을 읽으면서 그렇다면 이 '술꾼'작가들은 해장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헤밍웨이의 해장은 블러디 블러디 메리였나보다. 미드에서 종종 이 칵테일을 볼 수 있는데 대체 어떤 맛인지 궁금하면서도 먹어보고 싶지 않아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토마토에 우스터 소스라니…. 언젠가 먹어 볼 수도 있겠지.




술은 다시한 번 진실, 천진난만함, 원초적인 감정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실까. 나는 술을 좋아하면서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술은 긴장감을 풀어주고 맨정신일때보다 과감하게 만든다. 다소 낯을 가리던 나는 술 마시면 긴장이 풀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곧잘 말을 걸었고 그렇게 친구를 사귀었다. 그래서 술을 자주 마셨다. 긴장이 풀리니까. 그리고 술만 마시면 글을 쓰고 싶었다. 일기를 쓰든, 주변 사람에게 편지를 쓰든 뭐라도 적고 잤다. 여기 나오는 작가들도 그런 마음으로 술잔을 들지 않았나 싶다.

우리 애주가들에게 현재는 최고의 시대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빠르고 편리하게 세계 각지의 술을 찾아 볼 수 있고 그것이 판매되는 장소 또한 금방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더욱더 책임감 있는 음주를 즐겨야 한다.


언젠가 한국 버전의 '알코올과 작가들'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막걸리에 얽힌 한국 작가의 일화나 직접 매실주를 담궈 마셨던 작가의 일화 같은 것들.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시대를 앞서간 50s 퀴어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