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타인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삶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 화자 나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인물이다. 입양되기 전 고아원에서 '박에스더'라는 이름으로 지냈고 그전에는 철도 기관사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서 '문주'라는 이름으로 약 일 년간 지냈다.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문주는 잊고 지냈던 생모를 떠올린다. 그즈음 한국에서 문주의 이야기를 다큐로 찍고 싶다는 서영의 연락을 받고 고민하던 그는 '문주의 의미'를 찾겠다고 다짐하며 뜻밖의 '귀향'을 택한다. 숙소인 서영의 집 주변에서 복희 식당을 운영하며 복희라 불리는 연희를 만나 그의 삶을 마주하고 이해하면서 생모와 본인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암흑에서 왔다.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 암흑이 나의 근원인 셈이다. 방향성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홀로 그곳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
암흑에서 형성되어 암흑을 찢고 태어났으므로 내게는 부모가 없고, 내가 형성될 때의 태몽이랄지 세상으로 나올 때의 울음소리를 기억해 두어 이야기해 준 부모의 부모도 없으며, 기고 앉고 서고 말문이 트인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준 친척이나 이웃의 어른도 없다.
p.7-8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하늘의 끝은 우주와 맞닿아 있을 터였다.
우주
우-woo 주-joo,라고 나는 다시 한번 한국어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 순간 이전까지의 혼란은 모두 흩어지고, 단지 '우주'라는 이름만이 내 마음에 남았다.
(...)
이 순간을 기억해야지, 나는 생각했다. 바람의 방향, 나뭇잎의 색깔, 금세 헝클어질 구름의 모양까지, 그래서 우주에게도 언어가 생기면 이 순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 주리라. 이제부터 나는 우주의 모든 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와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이자 그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될 전령이며, 동시에 우주가 자라나는 과정을 증언해야 하는 증인이니까. 나는 그 역할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단 한순간도 우주에게 암흑 따위를 상상하게 하지 않을 터였다.
p.11
-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정체성, 존재감, 집, 예의 ……. 서영이 선택한 단어들은 일단 내 관심을 끌었다. 아니, 관심을 끌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그 단어들은 내가 삶에서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희구하는 것들이었다.
p.17-18
문주는 입양가정에서 자랐고 양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다. 학생 때는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한 번 제대로 요구해본 적이 없었고 본인의 삶을 미워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문주는 '이름'에 집착한다. 서영의 말마따나 이름은 정체성, 존재감, 집이니까. 처음 만난 서영과 소율에게 이름의 의미를 묻고, 이태원과 합정이라는 지명의 뜻을 궁금해한다.
"제일, 알아? 제일, 넘버 원! 내가 넘버 원 고맙고 미안한 사람, 그 사람이랑 닮았어. 눈매랑 입매가 특히 ……. 나, 깜짝 놀랐어."
(...)
"복희의 뜻은 뭐예요?"
(...)
"'복'도, '희'도, 모두 복이 있다는 뜻이야. 럭키라고, 알지?"
"그럼 복희는 럭키하고 또 럭키한 사람이네요?"
"그래, 맞아."
P.72
복희라 불리는 노인의 이름은 연희였다. 연희는 과거 어린 여자아이를 돌보았고 이후 그 아이를 입양 보냈다. 문주는 복희의 생모가 연희이며, 그가 자신의 생모처럼 자식을 버렸다 생각하고 원망하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나아가 본인의 생모까지 이해하게 된다.
엄마, 들리나요?
나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엄마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한때는 엄마의 전부였겠죠.
그것을 기억해주세요…….
(...)
엄마의 평안을 빕니다.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않을 저의, 진심입니다.
p.253
문주는 '문주'라는 이름에 담긴 정확한 뜻도, 자신을 철도에서 구해주고 키워줬던 기관사도, '박에스더'라는 이름을 붙여준 수녀님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본인의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프랑스의 나나든, 박에스더든, 정문주든 그는 그저 그로 존재한다.
액자처럼 문주의 이야기와 그 속에 연희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결국 그게 하나로 묶이며 그들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점이 좋았다. 이것은 문주가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지만 또한 동시에 연희와, 복희와, 복순 모두의 이야기이다.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사춘기 때도 그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그랬다. 한글 이름이 아닌 한자 이름인 것도 그렇고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내 이름 세 글자 중 마음에 드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네 글자로 지어주지. 그래서 나 스스로 이름을 새로 지었다.(지금 내 닉네임이 그것이다.) '레이디 버드'속 크리스틴처럼. 그런데 문주의 자아 탐색 과정을 보며 이름에 대한 뜻밖의 위안을 얻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고안해낸 조합인 것이다. 그 이름을 지으며 얼마나 큰 축복을 빌었으며, 얼마나 평안을 빌었을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내 이름이 좀 기껍게 느껴졌다.
소설 속에는 문주와 수자와 우식, 복순과 연희와 노파와 복희의 '대안가정', 앙리와 리사와 나나의 '입양가정'등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등장한다. 이런 가정 형태가 잘못된 게 아니고 서로에게 보금자리가 된다면 그것도 하나의 '가족'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추천의 말에 '미지근한 온도의 물 한잔'이라는 문장이 이 소설을 정말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딱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의, 오렌지 주스도 녹차도 아닌 그저 투명한 물 같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