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50s 퀴어소설

조반니의 방

by 미수
어쩌면 사람에게는 모두 자기만의 에덴 동산이 있지만, 불타는 칼로 그곳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단 에덴 동산을 나오고 나면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인 것 같다. 그곳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잊거나.
p.52



1956년에 쓰인 퀴어소설. 당시 금기시되었던 동성애를 다루고 있고 등장인물이 모두 백인이었기 때문에 흑인 독자들의 반감을 살 거라며 미국 출판사에서 원고를 반려했고, 그래서 초판을 영국에서 출간했다고 한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파리에 체류하는 미국인 백인 남성으로, 이 소설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데이비드에게 제임스 볼드윈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투영된 것 같아 재밌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요? 더 자주 오겠죠?」 그의 얼굴에 특유의 짖궂고도 근사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말을 더듬거렸다. 「왜요?」 「아! 친구가 생겼으니까 그렇죠. 그것도 몰라요?」 나는 내가 멍청해 보이리라는 것도, 내 질문 역시 멍청하게 들리리라는 것도 알면서 되물었다. 「이렇게 금방요?」 「안될 건 뭔데요?」 그가 합리적으로 받아치더니 자기 손목시계에 눈길을 돌렸다. 「원한다면 한 시간 더 기다리죠. 그때 가서는 친구가 될 수 있겠네요. 아니면 가게 마감할 때까지 기다리든가요. 그때는 친구가 될 수 있겠죠? 아니면 내일까지 기다릴까요? 그러려면 당신은 내일 여기 또 와야 할 텐데요. 내일 다른 할 일이 있는지 어떤진 몰라도.」
p.76

파리에 체류하며 헬라를 만나 사귀게 된 데이비드는 그녀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사이 조반니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데이비드는 걷잡을 수 없이 조반니에게 이끌리면서도 언젠가는 그를 떠날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방에서는 삶이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시간은 우리 위를 무심히 흘러갔고 시각도 날짜도 의미를 잃었다. 처음에는 그와 함께 사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기쁨과 경이를 낳았다. 물론 기쁨 이면에는 괴로움이, 경이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감정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시작이 한창 무르익고도 절정을 지나 알로에 즙처럼 쓰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p.147

머물던 방의 계약이 끝나자 조반니의 방에 들어가 같이 살게 되는 데이비드. 조반니의 방은 '하녀 방'이라 불리는 곳으로, 다소 어둡고 비좁았다.



「사람들은 말이야, 너무 더러워. 그치?」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냥 다 더럽다고. 싸그리 다. 저열하고 야비하고 더러운 인간들.」 그는 손을 뻗어 나를 자기 옆의 바닥에 당겨 앉혔다. 「당신만 빼고. 전부 다 그런데, 당신만 빼고.」
p.205

둘이 같이 살고 있던 어느 날 조반니는 돈을 훔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해고를 당한다. 사람에게 상처 입고 힘들어하는 조반니는 데이비드에게 의지하지만, 헬라가 스페인에서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말없이 조반니를 떠난다.



「당신은 자꾸만 내가 <뭘>원하는지를 운운하는데, 나는 내가 <누구>를 원하는지 말했을 뿐이야.」
「하지만 나는 남자라고!」 나는 벌컥 외쳤다. 「남자란 말이야! 우리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어?」
p.279

며칠간 데이비드를 찾아다닌 조반니는 데이비드와 마주치고 둘은 다투고 이별한다. 그 후 데이비드는 헬라에게 파리를 떠날 것을 종용하고 프랑스 남부에 신혼집을 마련한다. 그곳에서 헬라와 다투고 헬라는 미국으로 떠난다. 그 사이 조반니는 자신을 해고했던 사장 기욤을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 살인이 고의적인 범죄는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그리고 신문에 인쇄된 활자들 이면에서 그가 <왜> 그랬는지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파리에서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p.299


조반니의 살인 소식을 신문에서 본 데이비드는 조반니의 동기를 아는 사람은 본인 뿐일거라고 생각한다. 이 뒤로 데이비드가 상상한 조반니가 살인을 하게 된 상황이 묘사되는데, ~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이 아니라 실제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묘사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은 시간순이 아닌 데이비드의 유년시절 - 조반니의 사형 시기 즈음 이야기 - 조반니와 만나는 이야기의 순서로 구성되어있다. 결말을 제시하고 시작하는 방식은 흔하지만 제목이 ‘조반니의 방’이기 때문에, 조반니와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기대하고 읽는 독자를 집중하게 하는 효과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진 옮긴이의 말이 엄청 좋았다. 읽으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속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예컨대 이 소설에서 흰색은 백인 중심적 사회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검거나 어두운 색은 백인 중심성을 벗어난 모든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 어둠이, 즉 비(非)백인성이 데이비드를 매혹하면서 동시에 공포로 몰아붙인다."(p.341)는 문장을 봤을 때는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그렇지만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볼드윈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을 백인으로 설정했지만 그들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냉소적이다. "작중에서 데이비드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백인 미국인 남성들의 유약하고 기만적인 사고방식은 유럽인들의 솔직한 가치관에 대조되어 조롱받곤 하며, 조반니나 자크와 같은 인물들의 대사 혹은 데이비드 자신의 자기반성을 통해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p.340) "흑인이기에 미국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고, 또 게이이기에 흑인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으며, 또 흑인이기에 게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고, 더 나아가 미국인이기에 프랑스 사회에서 아웃사이더"(p.337)였던 저자가 왜 백인 캐릭터 데이비드를 내세웠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5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소설이다. 조반니의 처지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다. 그가 이주자가 아니었다면,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면, 가난한 청년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범죄에 노출되지 않고 초라한 죽음을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옮긴이의 마지막 말처럼, 볼드윈이 희망했던 시대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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