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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이 목적인 사랑을 위해 쓴 시나리오는 내 손으로 절대 고르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도 굳이 없어도 될 사랑 이야기가(특히 여남간의 사랑이라면) 있다면 마음속으로 별점 하나를 깎는다.
공감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장르 영화를 볼 땐 과몰입해서 자주 운다. 심지어 드래곤 길들이기 히컵 아빠 이야기에서도 눈물을 훔쳤다. 로맨스 영화 속 이야기를 그냥 남 일이라고 인식해서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남의 연애는 그저 남의 연애일 뿐. 비슷한 결로 한국 드라마도 잘 안 본다.
이런 내가 로맨스 영화를 재밌게 볼 때가 있다. 좋아하는 친구랑 대화를 나누며 같이 볼 때. 그 순간이 너무 즐겁다. 나는 작은 빔 프로젝터를 가지고 있다. 그걸로 천장에 빔을 쏘아 누워서 보거나 벽에 비추고 침대에 앉아서 본다. 주로 내뱉는 말은 감탄사다. 와 대박! 미친! 엥 여기서요? 갑자기? 우리는 이어지지 않는 듯 이어지는 대화를 한다. 그 순간이 너무 재밌다. 그러다가 동시에 같은 감탄사를 내뱉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면 말한다. 연애하고 싶다... 삼초 뒤 정정한다. 진짜로 하고 싶다는 거 아냐.
가끔 영화보다 잠들기도 한다. 대체로 걔가 먼저 잠든다. 그러면 나는 빔 프로젝터와 노트북의 전원을 끄고 걔 옆에 눕는다. 재밌게 보고 있다가도 혼자 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금세 흥미가 식는다. 결말조차 궁금하지 않다. 걔가 언급하는 게 아니라면.
너랑 같이 본 로맨스 영화는 두 손가락을 다 합쳐도 못 세. 솔직히 그 영화들 줄거리는 잘 기억 안 나. 우리가 같이 웃었던 장면이나 나누던 대화 같은 것만 단편적으로 기억나. 영화에 몰입하던 네 표정도. 머리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이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자리 잡았을 때에도 너랑 같이 로맨스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