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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여름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2018년 여름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짧고 얇은 소재의 옷들을 입을 수 있어 좋았고 수박과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이 있어 좋았다. 햇볕 짱짱한 날씨도 좋았다. 살갗이 옷 모양대로, 신발 모양대로 탄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여름밤의 선선함이 좋았다. 낮이 길어 한 저녁시간까지 낮의 기분을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더운 날씨를 핑계로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일 년 중 여름을 가장 기다렸다. 겨울에는 매년 여름 날씨인 나라로 여행을 갔고,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며 날씨에 맞지도 않는 여름옷을 샀다. 아무튼 나는 여름을 사랑했다. 이름을 여름으로 바꾸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2018년, 말도 안 되는 더위를 마주하게 된다. 그땐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굳이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산 밑에 있어 여름에도 그다지 덥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한 몫했다. 그 인공적인 서늘함이 싫었다. 그랬던 나는 지옥을 맛보게 된다.
가만히 있어도 더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옷을 입고 있어도 짜증 나고 벗어도 짜증 났다. 급하게 에어컨을 구매하려 했지만 주문이 밀려 한 달 뒤에나 배송받을 수 있댔다. 그래서 그냥 집을 나갔다. 호텔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외박했다. 어쩌다 집에서 자게 되는 날이면 새벽마다 깼다. 너무 더워서. 혹시 지금 불지옥 체험 중인가 싶었다. 뭐지 이거? 사후세계 미리보기인가?
어쩌다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자게 된 날이 있었다. 너무 더워서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맨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 진짜 덥다. 날씨 미쳤나?를 반복하던 중 한 친구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 속에는 선풍기를 창문 밖으로 향하게 하면 공기 순환에 의해 실내온도가 떨어진다는 내용이 있었다. 더위에 지쳐가던 우리는 당장 시도해봤다. 그러나 공기가 순환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선풍기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년에도 에어컨 없으면 진짜 집 나간다....
다행히 그다음 해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에어컨을 샀다. 처음 에어컨 킨 날에는 거짓말 좀 보태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불지옥 같았던 작년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게 천국이구나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그런 생각들을 했다.
아무튼 나는 아직도 여름을 좋아하긴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바로 여름이라고 답할 정도는 아니고. 삼초쯤 고민한 뒤에 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
여름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완전히 바라기 전까지 이 계절을 충분히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