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오단계, 이루카
SF가 우릴 지켜 줄거야의 두 번째 시리즈. 세 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화자는 가재민의 뇌를 담기 위해 가해라가 만든 안드로이드로, 가재민의 뇌와 연결되었고 가재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재민은 안드로이드에게 자신의 생체 유지 장치를 끊어줄 것을 요청하고 안드로이드는 이를 이행한다. 가재민의 엄마인 가해라는 이 행위가 살인이라고 여기며 안드로이드의 폐기를 원한다. 안드로이드는 변호사 오재정에게 변호를 요청하고 판결을 위해 재판이 열린다.
인간처럼 만들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놓고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능력만을 존재 이유로 삼아 주어진 능력과 다르게 살 기회를 박탈하거나 존재의 인지 자체를 사물화하고 그것을 강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서 탄생시킨 것입니다.
p100
기계의 기계권을 다루는 서사인 동시에 안드로이드 '오단계'의 성장 서사. (오단계는 어머니 '오재정'의 성을 따라 그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라면?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당연해. 아니, 기계가 설사 인간 수준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은 적어도 기계를 그저 소비재로 대해선 안 돼. 인공지능 시대는 새로운 노예 시대를 열어버린 거라고.
p76
대기 오염이 심해져 공기가 공간을 나눠버린 미래. 에어필터가 있어 공기를 맘껏 들이 마실 수 있고 필터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에어시티'와 그 밑으로 나누어진 구역들이 존재한다. 6구역에 사는 두슬기와 정해민, 윤예리. 그들은 과거 바이크 동호회에서 만나 지금은 친구이자 가족으로 살고 있다. 이들의 연대와 우정을 담은 이야기.
"우리가 가장 빛났던 시절, 그 시간을 언니들과 함께하고 싶었어."
p148
블랙펄 백진주, 루나벤더 문보라, 유리크리 고유리. 이들은 게임 헤븐나이츠 제작자들이자 가족이다. 백진주의 뇌신경에 질환이 생겨 헤븐나이츠를 기반으로 게임 치료를 진행하던 중, 의식 연결이 불분명해지고 이를 돕기 위해 문보라 또한 의식을 게임에 연결하게 된다. 문보라는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할 위기에 빠지고, 게임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고유리는 과거 게임 유저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오랜만입니다. '친애하는 헤븐나이츠 자매들.'
헤븐소드로 일격이 필요하지만,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현재 80,821 루루골드가 부족합니다. 루나벤더의 마지막 퀘스트, 그의 귀환에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유리크리
p205
'친애하는 헤븐나이츠 자매들'은 헤븐나이츠 여성 유저들의 암호다. 이 암호를 받은 유저는 즉시 발신인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 게임 유저들은 이 암호에 답장했을까? 문보라는 퀘스트를 깨고 백진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세 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바로 '대안 가족'이다. 오단계는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오재정 변호사와 가족을 이루길 택했고 그래서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았다. 은빛 늑대의 두슬기와 윤예리 또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정해민을 구해와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문보라와 고유리는 피가 섞인 남매임에도 동생을 신경 쓰지 않던 오빠를 대신해 백진주를 지켰다.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준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 그걸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세상은 발전하고 인간은 더 다양해지는데 왜 우리는 아직까지 피가 섞인 사람들만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는 걸까.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나이대가 중년이라는 점 또한 인상 깊다. SF 소설 주인공 자리에서 한 발 빗겨나갔던 중년 여성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