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까마귀, 박지안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원제 <코로니스를 구해줘>.
가상 현실 체험 게임과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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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BJ 주노(본명 장준오)는 과거 조작 의혹으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그는 WGN 방송 개국 1주년 특집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고자 한다. 준오가 진행할 게임 IOM 2는 '유저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공포의 근원을 건드리는' 사이코호러 게임으로, 방송은 준오의 게임 진행을 24시간 생중계한다.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이들은 과거를 반복한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p26
준오의 게임은 그가 자퇴했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게임은 준오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준오의 고등학교 시절과 백아영.
초등학교 친구였던 아영과 준오는 고등학교에 와서 다시 만난다. 준오는 자신의 거짓말을 다 믿어주는 아영을 좋아했고, 소문이 좋지 않다며 따돌림당하던 아영과 친하게 지낸다. 자신도 중학교 때 따돌림당했던 기억이 있으므로. 둘은 쌍둥이라고 불릴 만큼 닮아간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되자 다른 친구들이 준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준오는 점점 아영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잠시 아영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준오의 이성은 뒷덜미를 잡아채고 속삭였다.
진실을 말한 다음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p113
준오는 미니홈피 이웃을 쉽게 모으기 위해 예쁜 아영의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했다. 어느 날 옆 학교 남학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고, 준오는 네 사진이니 한 번만 대신 나가달라고 아영에게 부탁한다. 망설이던 아영은 그 부탁을 들어주고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는 아영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준오는 어느새 악녀에게 남자를 빼앗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고, 소문의 진상을 묻는 학교 친구들에게 소문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문을 네가 퍼트렸냐 묻는 아영에게 준오는 또다시 거짓을 늘어놓는다. 그날 아영은 자살했다.
"까마귀는 대체 왜 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신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면 금방 들킬 거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
"미움받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폴론 신에게. 하지만 그 결과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의 죽음으로 끝났지."
p53
게임과 연결된 채 혼수상태에 빠진 준오가 게임을 끝내려면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고 아영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준오는 아영을 살리지 못해 게임 속에 갇혔다. 아영을 죽이고 또 죽이고 죽였다. 준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준오는 아영을 구하고 게임을 벗어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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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까마귀는 원래 하얀색이었다. 거짓말의 대가로 까맣게 타 죽어 버린 까마귀와 그 뒤로 모든 까마귀의 깃털이 까맣게 변해버렸다는 속설. 소설의 제목이 '하얀 까마귀'인 이유가 뭘까. 거짓말로 인해 새까맣게 변해버린 준오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같이 색이 변한 까마귀들은 준오의 거짓말에 영향을 받은 학교 친구들일까.
인정받고 싶어 거짓말을 늘어놓던 준오. 그리고 준오의 거짓말을 전부 믿어주었던 아영. 우정의 증표로 서로 바꿔 달았던 이름표를 준오가 떼어버린 뒤에도 늘 준오의 이름표를 달고 다녔던 아영.(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너무 슬펐다.) 이 우정과 갈등을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려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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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까지 읽었다. 책이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을 것 같다. 모서리가 둥글어 찍힐 일도, 손 베일 일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몇몇 작품은 이미 읽었던 적이 있어 반가웠고 재독하니 새롭게 보이는 사실들이 있어 재밌었다. 글로 상상하며 읽었을 때도 박진감 넘치고 생생했던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게 새삼스레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