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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했던 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건 잠 안 오는 며칠 전 새벽이었다. 그 시간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메모장을 보다가 전에 저장해둔 문답을 발견했다. 싸이월드 하던 시절에 많이 하던 종류였다. 첫 문항이 내가 좋아하는 책은?이었다. 나는 이런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한다. 그 순간부터 좋아하는 책들의 목록이 서른 개는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 작가 이름이나 장르 종류로 대답하고는 한다. 어쨌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적기 위해 예전부터 썼던 독후감 목록을 보다가 2019년에 좋아했던 책/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책/그전까지 좋아했던 책으로 나눴고 정리해서 글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다. 엄마가 그런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카드 할부로 전집을 사주는 통 큰 일도 몇 번이나 벌였다. 엄마의 로망 같은 거라고 했다.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몇 권의 책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책 대여 서비스를 구독했었다. 회사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 찾아보니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생각보다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그림책을 읽었겠지만 기억하고 있는 제목은 몇 개 안된다. <할아버지의 천사> 이 책을 정말 좋아했다. 책 대여 서비스에서 읽고 반해서 따로 구매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죽고 난 뒤 수호천사가 되어 주인공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뵌 적도 없는 내 할아버지도 날 지켜주고 있겠지 믿고 지냈다. 옆을 못 보고 가다가 차에 치일 뻔하거나 발을 헛디뎌 떨어질 뻔했으나 그렇지 않았을 때마다 오늘도 천사 할아버지가 날 수호해 줬구나 하며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께 고마워했다. 이 책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사 다닐 때마다 소중히 챙겨 다녔으나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닌 나머지 잃어버렸다. 분명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하더라도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찾아보니 없었다. 또 다른 책은 <침대 밑의 괴물>이다. 여태 침대 밑의 악어가 제목인 줄 알았다. 침대 밑에 괴물이 있는 것 같다며 괴물을 추측하는 내용이다. 사실 서양 어린이들처럼 침대에서 혼자 자지 않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아주 좋아했다. 틈만 나면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구연동화를 아주 실감 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브라운 베어라는 영어 그림책도 좋아했다. 사실 풀 네임은 <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이다. 내가 이걸 읽을 당시에는 테이프와 세트였는데 지금은 CD와 함께 판매되고 있다. 이 책은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 때는 독서논술 모임을 했다. 정해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와 검사받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엄마가 시켜서 한 것이지만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끝나면 맛있는 간식까지 주니 이 모임을 꽤 좋아했다.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같은 학교 친구도 있고 다른 학교 친구들도 있었다. 같은 반 친구 말고 다른 반에도 친구가 생겨서 좋았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수호의 하얀 말>은 독서 논술 때문에 읽었던 책이다. 두 권 다 소장하고 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소중하게 챙겼다. 수호의 하얀 말은 수호와 그의 하얀 말과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부분에서인지 잔인하다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면 당연히 잔인하게 보이는 장면은 없다.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의 사이즈가 아주 크다. 그래서 보통 책꽂이에는 들어가지 않아 그냥 책꽂이와 벽 사이에 세워두고는 했다.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았나 보다.
더 큰 초등학생 때는 <다름이의 남다른 모험>과 <지엠오 아이>를 좋아했다. 이때부터 나의 SF 사랑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름이는 ‘이루미’라는 삽입형 칩이 있는 미래 이야기고 지엠오는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아이 ‘나무’ 이야기다. 둘 다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주며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를 사유하게 한다. 다름이는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집에서 심심해서 읽게 된 책이었다. 그분께 뭘 배웠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를 짧게 계속 배웠고 이사를 많이 다녀 그렇다. 수업에 관련된 책은 아니었고 그냥 재밌어 보여서 빌려 읽었고 사랑에 빠졌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또 읽었다. 그래서 비교적 줄거리가 잘 기억이 난다. 시공사 주니어 시리즈도 좋아했다. 고모 집에 갔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전집을 보고 엄마를 졸라 샀다. 지금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전권을 읽지는 못했다. <그 여자가 날 데려갔어>, <마녀를 잡아라>, <마틸다>와 재클린 윌슨의 모든 작품과 에밀 시리즈, 삐삐 시리즈를 엄청 좋아했다. 너무 좋아서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친구들에게 추천하며 빌려주기까지 했다. 지금의 취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웃기다. 스릴러, 여성 연대, 마녀 같은 키워드들.
중학생 때는 <클라우디아의 비밀>, <언니가 가출했다>, <카지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좋아했고 정말 여러 번 읽었다. 좋아하는 책들은 꼭꼭 씹어서 삼키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지금은 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시간은 없어서 재독 하기가 쉽지 않다. 이 시기에 책들을 더 잘 소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클라우디아를 보며 가출 계획을 세웠다. 아니, 가출 자체의 계획을 세웠다기보다는 혹시나 가출을 하게 된다면, 하고 가정해 계획을 세웠다. 할 거라면 제대로, 오래 가출하고 싶던 시기였다. 카지노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 이후로 모든 사이트의 비밀번호 질문을 인상 깊게 읽은 책- 카지노로 맞췄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도 정말 좋아했다. 분홍빛의 표지와는 다르게 마냥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읽다가 울기도 했다. 주인공 해금이 내 엄마와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더 깊이 공감 갔다. 그래서 이 뒤로 엄마의 삶은, 내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많이 물어봤다. 그리고 만화책이긴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소녀>를 정말 좋아했다. 용돈 모아서 9권 세트를 샀었는데 그 뒤로 몇 권 더 나오고 완결됐다. 10권부터는 빌려서 봤었는데 시베리아 갈 때 너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앞 권의 양욱일은 이해할 수 있었는데 뒷 권의 양욱일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히 앞 권의 양욱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선배가 부른다면 선생님께 신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