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향을 주는 동료

백수일기 15

by 미지

얼마 전 재밌는 포지션 제안을 하나 받았다. 커피챗이라도 할까 고민될 정도로 잘 정리된 제안이었다. 집에서 거리가 꽤 멀기도 하고, 조건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결국 거절했다. 제안에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신기한 호언장담이 포함돼 있었다. 사람 때문에 고통받는 직장인이라면 당장 끌릴 만한 내용이다.


그 내용에 별로 혹하지 않은 이유는 전 회사를 그만둔 이유에 사람에 대한 문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원 이상은 예외다. 업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성실하고 의욕 넘치는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 일부는 현재 방통대 동문으로 같은 소속(?)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 동료들과도 여전히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좋은 영향을 준 동료들 중에서도 전 회사를 다니는 동안 가장 배울 점이 많았던 한 명을 뽑는다면, 동갑내기인 옆 팀의 Y 팀장님일 것이다. 팀장을 하라는 제안을 계속 거절하며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것을 선택한 나와 달리 관리직이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꽤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되었는데도 인내심과 책임감이 대단하고, 항상 배우려고 하는 성실함과 의욕까지 갖췄다.


Y 팀장님과 나는 성격과 취향이 많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마음이 잘 통했다. 그 덕분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사내 스터디를 만들어 1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퇴근 후 같이 웨비나를 듣거나 책 추천을 주고받으며 배울 점을 고민했던 시간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때 Y 팀장님이 추천한 행복일기 영상을 보고 꾸준히 좋았던 것, 다행인 것, 고마운 것, 배운 것에 대해 일기를 썼는데, 회사 사람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한 것도 바로 Y 팀장님이다.


백수가 된 후 인상 깊게 본 김독지 채널의 영상이 Y 팀장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도 종종 알고리즘에 비슷한 영상이 뜨곤 했었는데 여전히 비슷한 알고리즘을 공유하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최근 내 알고리즘에 떴던 유튜브 영상 한 편을 혹시 보았는지 물어봤다. 인도에서 요가를 하며 한 달 동안 의도적인 고립을 하는 시간을 담은 영상이다. 왠지 취미로 요가를 하는 팀장님의 알고리즘에 이 영상이 있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직 보지 못한 영상이라고 했다.


영상을 공유한 다음 날 오후, Y 팀장님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공유한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필사했다며 사진을 함께 보내줬다. 역시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많이 성장하고 깨닫는 것 같다고 영상에 대한 감상을 길게 덧붙였다. 새삼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동료가 있는 곳에서 그래도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가십이나 비방, 혐오, 패배의식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좋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상대와 직장에서 만났고, 계속 교류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행운이다.


아직 백수 탈출이 요원해 보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어디서든 누구와 일하든 나도 좋은 영향을 주는 동료가 되어야겠다고.




오랜만에 쓰는 오늘의 행복일기

좋았던 것: Y 팀장님, S 선임님과 오랜만에 함께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오랜만에 먹은 쏨땀과 팀장님이 사다 준 앙버터 소금빵, 휘낭시에가 정말 맛있었다.

다행인 것: 스픽 깜빡하고 못할 뻔했는데 밤에 갑자기 떠올라서 불꽃을 지켰다.

고마운 것: 취향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다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배운 것: 삶에서 의도적이 고립이 필요한 이유를 타인의 영상을 통해 배웠다. 드물게 주어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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