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러브버그 때문이야

백수일기 14

by 미지

위이. 위이. 위잉.


아이스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겠다고 집을 나선 순간, 러브버그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징그럽게 엉겨 붙은 러브버그 한 쌍이 겁도 없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악! 오늘 처음 내뱉은 말은 외마디 비명이었다. 거리 한 가운데서 교양 없이 소리를 지르며 왁킹을 췄다. 벌레를 퇴치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발걸음을 뗐는데, 지나가던 행인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머쓱하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너무 습하고 더워지더니, 이젠 러브버그까지 난리다. 러브버그가 징그럽긴 해도 익충이라 물이나 뿌리면서 2주 정도를 기다리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도저히 못 참겠다. 괜히 기분이 나쁜 느린 움직임도,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것도,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자꾸만 눈이 마주치는 것도 다 불쾌하다. 이 꼴 보기 싫은 작은 곤충들은 내 일상을 생각보다 더 많이 흔들어 놨다.


러브버그를 핑계 삼아 집 안에 가만히 버티기로 했다. 올해 초에 몇 달간 시도했다가 멈춘 러닝을 다시 하려고 했는데, 달리다가 러브버그와 더 빠르게 마주칠까 봐 뛰기 싫어졌다. 환기도 아주 잠깐 했다. 왠지 러브버그가 들어올 것 같아서 문을 열어둔 동안 창문 틈을 노려보며 자리를 지켰다. 요리를 하면 환기를 해야 하니까 냄새가 날 만한 음식도 시도하지 않는다. 이게 다 러브버그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서류 탈락, 돈을 벌고 있지 않다는 불안에서 오는 무기력함도 일단 러브버그 탓을 해보기로 한다. 벌레 한 쌍을 핑계로, 벌레 한 줌 앞에서 맘껏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본다.


나를 갉아먹는 게 러브버그인지 스스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잠시 나태함과 무기력함을 모두 모른 척하기로 한다. 러닝도 산책도 요리도 다 미룬 채 침대에 한참 누워 보낸 하루.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 걸까. 모르겠다. 이게 다 러브버그 때문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단순하게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