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발생

백수일기 21

by 미지

한 명의 백수가 새롭게 발생했다. 전 회사에서 옆자리였던 다른 팀의 막내.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고, 나보다 일찍 새 회사에 입사했던 K님은 3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직한 곳을 뛰쳐나왔다. 옆자리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와 나는 웃기게도 나란히 백수가 됐다.


전 직장에 다닐 때 K님은 정말 무던한 성격이었다. 거의 화를 내지 않고, 짜증이 나는 일이 있으면 유행하는 말투로 웃어넘기는 편이었다. 그 곁에서 나도 큰 의미 없는 감탄사나 단어를 내뱉으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돌림 노래 같은 아무 말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퉁치는 날이 많았다.


사실 오늘은 전 회사의 S님이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이다. S님의 퇴사를 축하하기 위해 K님을 비롯해 같이 일했던 동료 여러 명이 치킨집에서 다시 모였다. S님의 환승 이직 못지않게 화제가 된 건 K님의 퇴사였다. 항상 허허, 웃어넘기던 K님의 흑화한 모습에 모두 깜짝 놀랐다. K님이 이직한 회사는 같은 대학 출신들이 모여 있는, 동아리 같은 조직이었다고 한다. 회식 때면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직무와 다른 일을 하라고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한다. 듣고 있으니 욕이 절로 나왔다.


이직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잡플래닛을 아무리 정독해도 입사 전에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K님의 이야기를 듣던 타 부서의 한 팀장님이 어딜 가도 똑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딜 가도 조금 다른 전 직장 같은 곳일 거라고.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 회사에는 좋은 동료들ㅡ이제는 반 정도 사라졌다ㅡ이 있었으니, 오히려 머무르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집에 가는 길, 치킨집에서 나눈 대화의 의미를 생각했다. 특히 어딜 가도 똑같을 것이라는 말. 곱씹을 수록 동의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주 좋은 회사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전 직장에 계속 머무르는 것보다 이직 실패를 여러 번 겪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회사를 떠난 선택에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어디선가 본 '헤맨 만큼 나의 땅'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회사도 직급도 퇴사하는 순간부터는 다 중요하지 않은 단어가 되지만 경험은 진짜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더 많은 진짜를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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