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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조각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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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 Jul 26. 2023

계획만이 내 세상 J의 이야기

상대적 시간의 흐름

 왜, 그런 적 있지 않나.

눈을 떴는데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막막할 때. 눈을 뜨자마자 내게 주어진 하루라는 24시간이 너무 버거울 때. 뭐 하고 보내야 하나 숨이 턱 막힐 때. 분명 오늘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존재하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을 때. 뭐 그럴 때.


 한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머리가 새하얀 상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도화지에 어떻게 뭘 그리고 써 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 그저 주어진 종이가 너무나도 커다란 상태. 아침에 눈을 뜨면 온신경이 멍하다. 계획을 세워 하나씩 달성하는 데에 온 시간을 썼던 성격이었기에, 세울만한 계획이 없는 현재 상태는 역으로 무기력함으로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생 중대사를 눈앞에 놓고 있기에 계획을 세울 거리를 찾았다는 것. 어느 날은 서류를 모으러 가고, 어느 날은 서류를 기입하러 가고, 서류를 모을 때까지 이걸 하고 저걸 하고 등등.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대적이고 혹은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이 무력화할 땐 내게 주어진 인생을 계획해 보자고. 계획형 인간은 계획이 없으면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계획적이라고 모두 좋은 건 아니다.


 내 나름의 해결 방안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커다랗고 새하얀 종이가 내 시야를 가린다면 그 종이를 빼곡히 채우거나, 혹은 찢어 그 구멍으로 도망치거나.

 종이를 빼곡히 채우기가 어렵다면 큰 부분부터 채워나가서 점점 작고 자세히 채워 나간다. 인생 계획도 크게 세우고 자세히 채우면 막막하던 것들도 할 만 해진다.

 종이를 찢고 탈출하면 새로운 길이 펼쳐져 있을 거다. 새로운 길은 분명히 어딘가로 이어져 있을 것이므로, 우선 필요한 건 용기다. 종이가 한 번에 찢기지 않더라도 몇 번이고 구멍을 뚫을 힘과 용기.


 무기력해서 힘이 들고 자꾸 몸이 수렁에 빠질 땐 괜히 몸부림치지 말자. 몸부림칠수록 깊이 빠져들 수 있으니까.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다가 육지가 오면 그 육지를 잡자. 죽자고 잡지 않아도, 뭍을 손 아래 놓고 몸을 띄워 숨통을 틔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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