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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Oct 21. 2022

쫓기듯 살지 않을래요

폰을 들고서 폰을 찾는 현실이지만

운동을 마친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가 막힐 시간이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도로가 복잡했다. 슬금슬금 기어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어본다. "나는 볼 수 없던 이야기~ 이젠 그 얘기를 해주실래요. 슬픈 표정 짓지 않아요. 애써 웃으려고 하지 않을게." 막힌 도로 위에서 잠시 부드러운 음률에 기대에 흥얼거려본다. 꽉 막힌 구간에는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속도를 내어 달렸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졌던 터라 서둘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폰을 들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주절주절 통화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통화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잊은 것이 떠올랐다.

"아들, 엄마가 차에 폰을 두고 왔나 봐. 잠깐만 기다려."

"............."

아이는 할 말을 잃은 듯했고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엄마, 무섭게 왜 그래? 핸드폰 손에 들고 있잖아."

"하하하하"

이것이 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냥 웃어본다.




어릴 때 '어른'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고, 어렵고 복잡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정신은 어딘가에 빠뜨리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전화기가 냉장고에서도 나오고, 세탁기에서도 나왔던... (집안 내력인가?) 이제 나도 그런 '어른' 중의 한 명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정신 줄을 꽉 붙잡고 사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거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왜 해야 되죠?" 이런 질문을 하는 어린이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주어진 길을 걸었다. 그것도 꾸역꾸역 가파른 계단을 오르듯 힘겹게... '이 계단의 끝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은 해봤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계단은 또 다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해야 할 일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었고, 신경 쓸 것들의 목록은 달력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어서, 이젠 일일이 챙기기도 버거울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파른 계단 위에는 '난, 이런 사람이야.'하고 당당히 외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고지를 선점한 어른들의 세계. 한참 아래에서 그곳을 선망의 눈빛으로 지켜보는 나. 이것 또한 나의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본다.


현실은 늘 이 모양으로 흘러간다.

폰을 들고서 폰을 찾지를 않나.

높은 계단 위의 사람들을 부러워하질 않나.

그런 현실을 비하하질 않나.

그래서 늘 쫓기는 기분이지 않나.


어서 빨리 성장해야지. (다 컸는데 얼마나 더 크라고)

어서 빨리 자리 잡아야지. (지금 이 자리도 겨우 잡은 거라고)

어서 빨리해내야지. (도대체 뭘 자꾸 해내라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안전해 보이는 곳을 바라보며 계속 이렇게 쫓기듯 살아가야 하는 걸까?' 반항심 같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나에게도 좋다는 보장은 없으며, 설사 좋다고 해도 이미 모두가 차지해버린 그곳에 나까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내 대답은 확실히 'NO'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의 이상은 그 가파른 계단 위가 아닌 거다. 어쩌면 뻥 뚫린 도로나, 평편한 들판, 혹은 출렁이는 바다일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나의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나하나 단단하게 만든 나만의 길에 서 있고 싶다. 그 길 위에서 쫓기지 않고, 느린 듯 여유 있게 걸어가는 모습. 그런 모습을 꿈꿔본다. 언젠가는 내 현실이 된다는 믿음으로!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0월의 주제는 <줄타기(이상과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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