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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Mar 10. 2023

자세히 보아야 웃기다

오래 보아야 유머스럽다. 내 아이도 그렇다

책상 서랍에서 물건을 뒤적이다가 대용량 저장장치를 발견했다. 컴퓨터에 연결하여, 무엇을 저장해 둔 것인지 살펴보는데, 그때부터 얼굴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깔깔깔 넘어가기도 했다. 호흡곤란을 느낄 정도로 넘어가는 웃음소리에 남편이 뛰어와서 묻는다. "무슨 일이고? 왜? 먼데?" 그 안에는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있었고, 우린 그 모습을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웃었다.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여 같이 웃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기는 글 쓰는 공간인 만큼 글을 저장하는 게 좋겠지. 아이 글에 담긴 유머와 재치를 아주 살짝 기록해보려 한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좀 엉뚱하다. 차근차근 말하기를 좋아하거나,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말을 꺼냈다 하면 웃음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당시, 담임 선생님이 적어주신 행동특성 종합의견에도 나의 생각과 일치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이의 유머는 말에도 들어있지만, 글에도 들어있었다. 또 참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는 나와는 달리, 책을 좋아하거나 글쓰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아이를 만들 당시? 아빠의 유전인자가 80프로 정도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운동을 전공한 아빠의 피를 물려받아, 운동부에 속해있으니 '피는 못 속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말을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신체적인 능력을 더 타고난 듯 하지만, 뜻하지 않게 글에서도 간혹 위트가 발견되곤 했다. 문제집 답안지에 기록된 글, 학교에서 가져오는 활동지, 일기 등...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은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는데, 대용량 저장장치에서도 발견된 것. 그중 일부를 꺼내본다.




"우연의 일치를 이런데 써먹을 줄이야!"


"거짓말은 나쁜 거지만 은근 공감되고 말이지"


"네 맘 = 내 맘"


"지렁이 젤리를 그리도 좋아하더니만, 이름에도 들어있었군."




아이의 어릴 적 기록을 살 푼 들춰보았는데 너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은근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내 아이의 글 속에 들어있는 유머와 재치가 참 사랑스럽다. 지금 심경을 대변할 수 있는 시가 떠오른다. 이 글의 제목에서 눈치챘겠지만,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응용해 봐야지. 



웃음꽃



자세히 보아야

웃기다


오래 보아야

유머스럽다


내 아이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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