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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Mar 29. 2023

그러니까, 사소한 공감이 필요한 거였다

감정을 읽어주고 표현하는 것

퇴근하면 농담 섞인 말투로 등장하던 남편인데, 그날따라 말이 없고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진 채 등장했다. 밖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나?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러다 말겠지 하며 가벼이 여겼다. 하지만 남편의 근심은 어두운 표정만이 아니라 까칠한 행동에서도 묻어났다. 


"밥은 먹었어? 무슨 일 있어?" 질문 공세를 펼치자 아무 일도 아니라며, 방으로 쿵쿵 걸어 들어간다. '아니기는, 저렇게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남편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단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내내 신경 쓰였던 나는 방문을 열어서 오늘은 밥 대신 술을 한잔하자고 권해보았다. 남편은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왔다. 식탁 위에 조명은 채도를 낮추어 은은하게 바꾸고, 간단한 술안주와 마실 거리를 준비하고는 말을 걸어보았다. "안 좋은 일 있었어? 뭐 때문에 그런 건데?" 속사포같이 질문을 던지며 술잔을 채워주었다. 


궁금해서 보채듯 물어보는 나의 물음에도 남편은 대답 없이 술을 입속으로 털어 넣는다. 아직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음에도 기다리지 못해 연이어 물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그제야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남편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제일 처음 떠올랐던 솔직한 생각은 '뭐야. 별일도 아니고만...'이었다.  하지만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 앞에서 그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었기에, 사건에 대한 상대방과 남편의 행동을 정리 분석하고, 내 딴에는 각종 대안을 착착 제시하며, 나라면 이렇게 처리할 것 같다고 훈수를 두었다. 술도 한 잔 마셨겠다 한층 더 높은 톤으로 사방팔방 침을 튀기며 설명하던 내 이야기에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대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명쾌한 대안 제시에 같이 환호하며 속 시원해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심리 분석 연구하냐? 많이 알아서 좋겠다." 되려 이런 말을 한다. 아니 이게 무슨... 기껏 기분 풀어주려고 노력했더니,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답변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얼빠진 내 표정을 보며, 해석이 필요하겠다 싶었는지 남편이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상황을 분석해 달라는 게 아니라, 사소한 공감이 필요한 거라고!"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은 듯했고, 곧이어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날에는, 그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는 게 먼저였던 거다. 거기다 대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 들었으니, 사이다가 아닌 고구마 같은 대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일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 순간 느껴지는 내 감정을 읽으려 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던 것 같다. 감정을 읽어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건데도 그것을 드러내기보다 감추기 급급했던 시간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감정에 대한 사소한 공감을 주고받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곁에서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날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따뜻한 말 한마디, 사소한 공감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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