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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Oct 04. 2023

그날 밤 식탁에서

진지하게 야구하고 싶다던 너의 말

엄마 아빠, 나도 oo처럼
진지하게 야구하고 싶어



밥을 먹다 말고 툭 던지는 아이 말에, 씹고 있던 음식이 목구멍에 덜컥 걸렸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라더니, 그동안 입 밖에도 꺼내지 않던 말을 이리도 갑작스럽게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옆 동에 사는 동네 야구 친구가 있었다. 동네에서 야구쟁이 남자아이들이 죄다 모여서 자기들끼리 팀을 이루어 야구 '놀이'를 하는 것을 동네 야구라 칭한다. 말 그대로 함께 야구 놀이를 했던 그 친구는 4학년 2학기가 될 무렵 정식으로 학교 소속의 엘리트 야구를 시작했는데, 아이가 말했던 'oo처럼'은 그 친구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동네 야구에서 두 아이는 꽤 알아주던 실력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정식 야구인이 되는 길로 접어들자, 다른 한 명도 크게 동요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덤덤 그 자체. 오히려 아빠가 더 야단법석이었다.   


"운동을 시키려면 4학년이 적기야. 우리 아들도 야구 초등학교에 전학시켜서 운동을 시켜보자!"

남편이 말했다.

그때 당시 남편의 이런 의견이 내 귀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로 들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데, 내 아이를 고난의 길로 밀어 넣을 순 없지."


"너는 아들의 미래가 공부 쪽이라 보나? 내 눈엔 운동으로 보이는데."


"운동은 즐기는 것에서 그쳐야지, 그 길로 죽자고 덤비는 건 난 아니라고 봐."


자녀의 미래를 보는 시각에 있어 부부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는 순간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나오는 반응은 한결같이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 어려운 길을 굳이 왜 가려하나, 돈도 엄청 많이 든다던데, 성공할 확률은 또 얼마나 어려운데, 왜 하필이면... 대략 이런 반응.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옆동의 아이를 따라 운동을 시킬 판이라니.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남편을 설득했고, 결정적으로 아이가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데 부모가 미래를 섣불리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잘 극복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6학년이 된 아이에게서 결국 이 말을 듣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남편이 아이를 더 잘 분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우리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용기가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갑자기 웬 운동이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엄마 아빠, 실은 oo이가 야구를 시작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그땐 내가 어려서(지금도 큰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마음을 나도 잘 몰랐어. 근데, 시간이 갈수록 야구에 대한 마음이 더 커졌어. 나 야구해 볼래.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정말 잘할 수 있어.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말하기를 귀찮아하던 녀석이라 단답형 내지는 짤막한 문장을 구사했는데, 이번에는 참 길게도 생각을 말했다. 그렇다. 아이는 말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그동안 마음속에 야구라는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부부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나는 몹시 흔들렸다. 그런데 남편은 또 다른 입장이었다.


"안돼. 지금은 너무 늦었어. 하려면 4학년 때 했어야지. 운동을 한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고."

 

예전엔 등이라도 떠밀 기세더니, 이번엔 너무 늦었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을 기세였다. 나 역시도 이런 중대사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아빠, 그럼 테스트만이라도 받아보자. 감독님 만나서 테스트받아 보고, 아니라면 나도 생각 접을게."


그날 밤 우리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는 표현을 실감케 하는 식사를 했다. 이런 건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그날 이후 아이가 운동에 '운'자라도 꺼낼라치면 나는 서둘러 말을 돌리거나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아이는 뜻을 쉽게 굽히지 않았고, 몇 날 며칠을 우리를 붙잡고 설득했다. 제발 테스트만 받게 해달라고...


테스트받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다. 야구하든 안 하든 운동 상태를 진단해 보는 절차는 남편도 수긍이 가는 모양이었다.



테스트를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야 하나? 막막해서 옆 동에 사는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지금은 정원이 다 차서 학교 엘리트는 힘들 거예요. 차라리 ooo리틀 야구단을 가보는 거 어때요? 중학교 1학년 1학기까지만 리틀에 있고, 2학기부터는 같은 중학교로 합류할 테니. 그때까지 야구 계속하면 우리 아이랑 만나겠네!"


말하자면 리틀야구단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1학년 1학기까지 선수를 육성하여 2학기부터는 중학교 엘리트 야구로 입성시켜 주는 코스다. 우리 아이처럼 정식으로 그 코스를 밟을지 말지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단계 밑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라고 보면 좋겠다. 


며칠 뒤 우리는 리틀 야구단으로 향했다. 아직은 정식으로 야구를 시켜볼 마음은 없었기에, 그래도 정 해봐야 한다면 취미로도 할 수 있는 리틀 야구단을 선택한 것이다. 



리틀 야구단 감독님을 만나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자 했다. 이때 남편은 감독님이 택도 아니라며 취미로 하던지, 아니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해줄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 뜯어말릴 요량으로 갔건만...


"힘이 남다르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선수부에 들어와도 좋습니다. 물론 시기적으로 늦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도 이유 없이 아이를 받진 않아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아뿔싸...

감독님의 말에 아이는 더욱 의기양양해지고,

남편은 은근히 기쁘면서도 이게 아닌데 싶고,

나는 이거 정말 큰 일인데, 이젠 어쩔 수가 없겠다며 자포자기 상태에 다다른다.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하는 것처럼

아이의 진로를 '운동'으로 선택하고 말았다.

우린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해 버렸다.

  

'그래. 지금 하고 싶은 거 안 해보면 언제 해보겠어. 나중에 커서 왜 안 시켜줬냐 두고두고 원망 듣느니, 시켜주고 큰소리나 쳐야겠다. 훗날 아들이 이 선택을 신의 한 수라 말하며 평생 고맙게 여기기를.'




삶에 정답은 없어.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저 결정을 감당해 내며 살아가는 것뿐이지.
틀린 건 없어. 잘못된 건 없어.
그러니 네 선택을 옳다고 여기고 앞으로 나아가.
너무 복잡할 땐 심호흡 한 번 하고
조금 쉬었다 가자.
이제 그럼, 나가볼까.
- 유귀선 <너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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