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3>을 보았다. 세상은 넓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은 많아서인지, 언제부턴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오면 아무런 감흥 없이 그냥 스치기 일쑤였다. 싱어게인이라는 글자 옆에 시즌 3이라는 숫자가 붙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음에도, 스치지 않고 멈추어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노래를 썩 잘 부르는 편이 아니었다. '었다'라고 하면 과거형이니 이것조차 정정한다. 현재도 잘 부르지 못한다. 교과서를 읽듯 또박또박 박자와 글자를 부여잡으며 그냥 열심히 부를 뿐. 이런 나여서 그런지 몰라도 숨소리조차 음악이 되는, 리듬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유형의 노랠 듣게 되면 턱을 무자비하게 개방한 채,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볼 때 나름의 까탈스러운 심사 기준도 있었는데, 그날도 초반에는 심사위원으로 빙의하여 출연자들이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른지 확인하느라 노래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렇게 눈으로만 보던 노래를 마음으로 만난 건, 49호 가수의 '가잖아'를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쉬운) 가수다.'
노래를 부르기 전 자신을 소개했던 문장이었는데, 평범하게 산다는 것 자체만도 어려운 세상에서 내 음악이라도 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쉬운 가수라 지칭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비 순간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른손 검지가 절단되었던 사고를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기타를 치냐는 물음에, 아직 손가락 네 개가 남았고, 이것을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꽤 멋지고 단단한 대답을 내어놓는 출연자였다. 사전 인터뷰 때부터 '기인(奇人)'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이 사람! 역시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면 속으로 훅~ 빨려 들어갔다.
49호 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노래 기술을 평가할 새도 없이, 노래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치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모두가 멍해졌던 이유에 대해, 출연자 코쿤의 심사평을 듣고서 알 것 같았다.
집중도 몰입도가 뛰어난 무대를 보면
저도 빨려 들어갈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 하나만으로
공간이 다 바뀌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부르는 노래의 이야기 속에 생생히 살아 있는 인물과 지금 여기에서 숨 쉬는 내 마음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나와 타인이 겹칠 때, 잊고 살기 마련인 내 안의 아릿하고도 희미한 어떤 느낌과 만날 때 비로소 전율이 흐른다. 내 귓가에 타고 흐르는 음악에 빠져듦과 동시에 묘하게도 머릿속에선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글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순간과 닮아있다.
싱어게인 = 라이팅 어게인(Writing again)
시공간을 바꿔주는 기인의 노래처럼, 나의 글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기인(奇人)'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다가가고 싶다. 빨려 들어갈 듯 시공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공감으로부터 마침내는 지쳐버린 누군가의 마음까지 안아줄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특별한 목소리가 아닌 특별한 눈을!
나는 글이라는 창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인생과 꿈을 본다.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의 순간도 있고, 실수도 하지만 곳곳에 있는 기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배운 것들은 또다시 이런 글을 통해 어디론가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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