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생일 후기. 실화다.
봄이 울렁거린다. 꽃잎이 다 진 벚꽃나무의 푸른 잎사귀가 햇빛에 넘실거린다. 길거리에는 반팔 차림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년보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어코 현기증 나는 봄이 왔다.
올해 봄은 나에게 서른 번째 봄이었다. 워낙 의미부여를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서른 번째 생일은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압박감에 휩싸였다. 생각해보면 몇 년 전부터 생일은 그렇게 버틴 것 같다. 기분 나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도망 다니면서. “생일인데 뭐해?”라고 누군가 물으면 대답하기 나쁘지 않은, 나도 상대도 납득할만한 장소(여행지)에 나를 데려다 놓고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로부터 멀찍이 도망가 있었다. 매해 나 스스로에게 현실 도피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
올해 도망지는 제주도였다. 2박 3일간 제주도는 첫날 일정을 빼고는 내내 흐리고 비가 왔다. 마지막 여행 날인 생일날 아침에는 머물렀던 숙소에서 브런치 세트와 관자 샐러드를 먹었다. 굳이 함께 갔던 친구가 생일이라고 넉살 좋게 사장님께 말해 버리는 바람에 공짜로 탄산음료를 얻어 마셨다.
아침을 먹은 후 전날 가려다가 못 간 김영갑 갤러리로 향했다. 야심 차게 챙겨 간 원피스는 제주의 바람을 막아내기엔 너무나도 얇았고, 나는 이내 콧물을 훌쩍거렸다. 덜덜 몸을 떨며 들어간 갤러리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을 때. 그제야 신용카드를 숙소에 놔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에 다시 돌아가도, 짐을 다 들쑤셔도 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계산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손을 씻다 선반에 카드를 올려둔 기억이. 다행히도 이후 일정이 제주시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기에, 일단 갤러리를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 카드를 찾기로 했다.
김영갑 갤러리(http://www.dumoak.com/)는 생각보다 모든 것이 좋았다. 날씨가 흐려서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전시된 사진을 보니 제주의 오름과 바다, 바람에 ‘몰입’한 작가의 삶이 오롯이 느껴졌다. 하지만 난 전시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카드가 숙소에 없으면 어떡하지. 그 사이에 누군가 카드를 사용하면 어떡하지. 그냥 바로 다시 숙소로 돌아갔어야 했을까. 오름 뒤로 넘어가는 강렬한 일몰 사진을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 카드 분실에 대해서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이지 불편한 일이었다.
가능하면 천천히 지금 이 곳의 사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처럼, 나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바보처럼 왜 바로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지 않았는가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왜냐하면, 우선 친구에게 미안했다. 함께 있는 친구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내내 나 대신 렌터카 운전을 해주었고,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나의 불안함이 전달되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이런 일 정도는 아무 일 아닌 척, 초연한 척, 엽서까지 나에게 생일선물이랍시며 사주었다. 조급하지 않고, 불안해 보이지도 않게. 게다가 여기까지 온 이상 갤러리를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건,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 나는 나의 선택을 끊임없이 합리화하며 전시를 둘러보았다. 가로길이가 극대화된 사진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껴보고자 안감힘을 쓰면서.
두어 시간 정도의 연기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을 때에도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다. 뻘쭘하게 서있던 나보다 렌터카를 먼저 발견한 사장님은 운전석에 앉아있던 친구에게 카드를 건네주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아이고 그렇게 놓고 다니지 말아요. 이제”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차로 돌아가 조수석 문을 열어보니 카드가 영수증과 함께 좌석 위에 올려져 있었다.
‘별 일 없어서 다행이다’ 얘기하며 우리는 전복돌솥밥을 먹기 위해 명진전복으로 향했다. 가늘게 내리던 비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날씨에 어울리는 궁상맞은 노래들을 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니 서울은 날씨가 무지막지하게 맑았다. 미세먼지에 뿌옇던 서울 하늘은 그날따라 유난히 봄기운이 완연했고, 벚꽃은 만개해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여행 때마다 비를 몰고 다니는 ‘아메 온나’라고 했다. ‘아, 나는 용띠라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 가면 흐렸어. 용이 구름 몰고 다닌다고 선생님들이 쯧쯧했었지.’ ‘이번 여행 날씨 알 만하다’와 같은 영양가 없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폰의 스크롤을 당겼다 올렸다 하며, 친구들의 인스타 사진에 하트를 누르며.
다시 또 삼십여 분간을 달려 도착한 명진전복은 두 시간은 대기해야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음식점을 알아보기 너무 귀찮았던 나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아일랜드 조르바. 가깝고 방송을 타서 유명하고, 그밖에 딱히 기다릴 장소는 없고. 바닷가 근처라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검정 스타킹을 신어도 추운 날씨라고, 제주의 4월은 따뜻하지 않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음을 원망하며 바람에 산발이 된 머리칼을 부여잡고 카페로 들어섰다. 방송에서 보았던 무심하고 시크한 언니가 우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설명해 주었다. 넓은 테이블들은 공유하게 되어 있었고, 우리는 이미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 불청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오늘 제가 생일이거든요. 그것도 서른 번째 생일이요.’ 묻지도 않은 질문에 혼자 마음속으로 대답해가며 책꽂이가 있는 방에 자리를 잡았다.
‘식당에서 언제 전화가 올까’ 친구는 지친 표정이었다. 알게 모르게 내 카드 분실 때문에 마음을 썼을 것이고, 배도 고플 것이고. 일단 바닷가의 따귀 바람에 우리 둘 다 얼이 나가 있었다. 조용히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맘이 통한 건지 친구는 폰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선반의 책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백석 시집이 있었다. 계속 백석 평전을 사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맘만 먹고 선뜻 실천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사랑 김연수 작가님이 백석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강연회에서 했기 때문이고, ‘흰 바람벽이 있어’가 나의 최애 시이며, 며칠 전 과외를 위해 ‘선우사-함주 시초’를 읽고 또 마음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인과관계 따위 밥 말아먹으라는 심정으로 나는 그 순간 또 의미부여를 했다. ‘이것은 생각지도 못한 생일선물이다.’ 생일날도 고생이다. 하늘이 나를 이다지도 귀해하고 사랑하여 외롭고 쓸쓸하도록 제주까지 도망 온 나를 위해 비를 흩뿌리시나니. 마음껏 우연히 발견한 시집에 의미부여를 하고 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겨우 해 낸 의미 부여 앞에서도 계속 불안했다. 마음껏 다 못 읽었는데 식당에서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 친구가 심심해하면 어떡하지. 여행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팔자려니 하고 응당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니까. 아니 하늘이 준 생일선물인데, 뭔가 음미할 시간도 없이 식당에 가야 하면 어쩌지? 또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미명계> 가 눈에 들어왔다. 잔뜩 흐린 오늘처럼 시 안의 새벽도 흐렸다. 빛나는 건 오직 새벽녘에 길을 나선 장사꾼의 등불에 비친 나귀의 눈. 서럽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 나도 서럽다. 쫓기듯이 시를 감상하고는 가장 예쁜 구도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애를 썼다. 내 의미부여를 누군가에게 증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나 서른 살 생일에 백석 시 읽는 여자야. 맥락 없이 인스타에 올린다면 또 누군가 하트를 눌러주겠지.
두세 시간 전에 김영갑 갤러리에서 내가 하던 짓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순간순간 몰입하지 못하고서는 증명을 위해서만 애쓰고 있었다. 이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야. 마음에 드는 구도의 사진을 찍고, 싸늘하게 식은 드립 커피도 다 마시고, 화장실도 두어 번 들락거리 고나서야 식당에서 전화가 왔다. 카페에 들어온 지 한 시간 이십 분이 지난 후였다. 시를 감상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엇을 위해 애썼나. 뻘쭘해진 나는 다시 바닷바람에 따귀를 맞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전복돌솥밥을 먹고 나와 네시쯤 되자 할 일이 없어졌다. 야심 차게 밤 아홉 시 비행기를 예약해놓은 우리는 비가 올 거라곤 생각도 안 했으므로 바닷가에서 바람맞으며 멍 때릴 생각뿐이었다. 결국 공항 근처 시내에 있는 메가박스에 가기로 했다. 음. 메가박스는 서울에도 많은데. 딱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다. 요 근래 보고 싶은 영화는 제깍제깍 대학로의 영화관에서 다 본 후였다. 친구가 고른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극장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아마 우리처럼 비가 와서 할 일이 없어진 여행객들 같았다.
영화가 중간쯤 진행되고 음? 생각보다 진부한데?라고 생각할 때 즈음. 새끼손가락이 허전했다. 반지. 반지! 반지가 없었다. 반지를 놓고 나왔다. 다시 기억을 되돌려보니 어젯밤 씻을 때 2층 화장실 세면대 구석에 반지를 빼놓았던 일이 떠올랐다. 아까 카드를 찾으러 갔던 그 숙소다. 비싸거나 의미 있는 반지는 아니었지만, 잃어버린 그 순간 미친 듯이 의미부여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맘에 쏙 드는 반지 디자인을 찾기 쉽지 않을 텐데. 그동안 기분 내고 싶을 때마다 꼭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녔던 반진데. 친구들이 몇 번씩 예쁘다고 칭찬도 해줬던 반진데. 아르바이트할 때 탈의실에 놔두고 왔어도 다시 찾은 반진데. 무엇보다 오늘 생일인데? 생일날 뭔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근데 왜 또 하필 그 숙소야. 다시 전화하기도 민망한데. 다시는 뭐 놓고 다니지 말라고 아까 아저씨가 그랬는데.
영화 내용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다. 영화는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울어라’를 연발하고 있었다. 울고 싶다 정말. 나한텐 반지를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숙소에 전화를 거나, 지금 당장 영화를 안 보고 뛰어나가나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친구는 아무 사정도 모른 채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일단은 영화가 끝나길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였고 우편으로 부쳐달라는 수밖에 없겠다 혼자 계속해서 생각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극장에 조명이 켜지자, 친구에게 말했다. “나 반지 놓고 왔어.”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울먹거리는 내 목소리에 어떡하냐는 말을 연발했다. “근데 아까 그 숙소야. 반지 있는 데가. 웃기지?” 이번엔 친구도 나도 빵 터졌다. 다시 숙소에 전화를 걸어 우체국 가실 일 있으실 때 착불로 붙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거듭거듭 인사를 했다. 속으로 정신 나간 년 소리를 백번도 더 했을 것 같은 아저씨께 다시 제주에 오면 꼭 들리겠다고 맘에 없는 소리도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창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리치고 있었고, 친구는 비에 젖어 뿌옇게 된 사이드미러 좀 닦아달라며 내게 휴지를 한 장 뽑아 내밀었다.
이쯤 되니 나도 모르겠다 싶었다.
좋은 하루였다. 찾을 것은 다 찾고, 싸우지도 않고, 별 사고도 없는. 게다가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그 최고의 소재가 된 ‘나의 하루’는 엉망진창인 생일이었다. 무엇 하나 즐기지 못했던 –타인의 꽃놀이를 동경하고, 놓쳐버린 것, 오지 않은 것을 계속해서 기다려야 하는– 생일이었다.
서른 번째 생일. 딱 하루가 이렇게 인생의 축소판 같은 수 있나 싶어 실소가 나왔다.
봇물 터지듯 친구한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사실 관심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잘 될 것 같지가 않아. 우울해. 기분 나빠. 왜 내가 제주에 내려왔더니 날씨가 흐려?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없어? 오늘 내 생일인데. 난 왜 이렇게 멍청해?
창문을 열고 사이드미러를 닦으면서 자책이 시작되었다. 내가 닦는 것이 내 마음인지 사이드미러인지, 친구가 내민 휴지가 정말은 나 눈물 닦으라고 준 것은 아닌지. 왜 이렇게 하루가 은유적인가에 대해.
결국 검은 늪으로 걸어 들어간 나를 본 친구가 이 잡듯 맛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이었다. 늦게 먹은 전복돌솥밥. 한아름 사 갖고 들어간 팝콘과 콜라. 전혀 배고프지 않았지만, 핸드폰 두 대로 검색하고 주소 찍어보고, 검색하고 주소 찍어보는 친구를 말릴 수 없었다. 우울할 땐 역시 맛있는 음식이다. 우울할 땐 역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위해 발을 동동 거리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이 최선이기에.....(아. 근데 친구는 배고팠을지도 몰라...) 밥을 먹자. 탄수화물은 자비와 관대함과 자기 평정의 시작이니까.
저녁을 먹었고, 비행기는 늘 그렇듯 연착되었고, 김포에 도착하니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리무진 버스에 올라 결국 나는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올렸다. 꽤 괜찮은 생일을 보낸 듯. 그래. 다들 모처럼 맑았던 서울에서 오늘 하루 기뻤으면 되었다는 식의 어쭙잖은 선심을 담아.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을 시간. 생일이 지나가버린 것에 대해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생일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면, 여느 날과 다름없었을까. 적어도 나를 ‘제주도’로 도망가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럼 이 수많은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심심하다고 버스정류장에 마중을 나왔다. 내내 비가 내렸다는 나의 말에 ‘거기는 뭐하러 갔냐고, 서울에 그냥 있지.’라고 말했다.
덜컥거리던 캐리어가 조용해졌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아니야. 엄마 그래도 잘 다녀왔어.” 엄마의 핀잔에 기억이 나버렸다. 내가 제주도를 간 이유. 제주도를 가지 않았다면, 나는 서울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더 불행했을 것이다. 어떤 생일을 계획했어도 나의 서른 살 생일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 채우진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움직였다. 과외 일정을 미리 조율하고, 숙소와 항공권을 예약했다. 좀 더 나은 내 생일을 위해서. 상처를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 바보가 되는 건 그만하고 싶었으니까.
애초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면 실패도, 마음 아플 일도 없었다. 잘못된 선택이란 것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난 모든 일에 어느 정도 나를 방어할 수 있다. 최상의 기쁨도 없겠지만, 최악의 절망도 피할 수 있다.
나는, 최악의 절망을 피하는 하루보다는 최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하루가 더 낫겠다는 믿음 때문에 제주도를 갔던 것이다.
의미부여는 필요하다. 아끼던 반지를 잃어버릴지도 모르고, 함께 간 친구와 싸울지도 모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일 생일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부여한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 이런 도박이라면, 응원하고 싶다. 속상하고 아픈 일이 생길지라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삶이 후회를 덜 남기는 쪽이라는 걸, 지난 이십 대에 배웠기 때문에.
선심 쓴 사진을 올리고 인스타그램의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작년에 내가 올린 김연수 작가의 문장이 있었다.
“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내 서른 살 생일에 던졌던 의미부여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사랑과 배려로 가득 채워진 일이었기에. 엉망진창이라 할지라도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다섯 쪽에 육박하는 글을 써냈으니까.
당신의 장점,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의미부여를 마음껏 펼쳐나가길. 그러다 엉망진창이 되거나 망하면,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기를. “맞아. 나도 서른 살 생일에 그랬어!”라고 온 마음을 다해 맞장구 쳐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