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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May 23. 2017

누가 누가 제일 나쁘게-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리뷰.

*브런치패스 시사회를 다녀와서 작성한 글입니다.

*심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누가 가장 나쁜 놈일까.


친구들이랑 그런 심리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꽤 유명한 심리테스트라 다들 한 번씩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L과 A, 하지만 그들에게 경제적 사정이 생겨 A가 돈을 벌러 다른 먼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그 때 L을 흠모한 S는 A가 없는 틈을 타 돈으로 L을 매수하려고 하는데. 이 상황에서 탈피하고 싶은 L은 친구 M에게 돈을 꿔달라 애절하게 부탁한다. 하지만 M은 이를 거절하고, 결국 L은 경제적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S와 하룻밤을 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이 L과 A는 다시 만나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A의 친구였던 F가 A에게 L과 S사이의 일을 말하게 되고 결국 L과 A는 헤어지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이 이야기 중에서 가장 나쁜 놈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대답하라는 심리테스트.


(자신이 어떤 이니셜을 순서대로 나열하느냐에 따라 인생에서 우선시하는 가치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식의 심리테스트였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때 나에게 흥미로웠던 건 이 심리테스트의 결과보다, 모두의 대답이 달랐다는 것이었다. 대답하면서 엄청 싸우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난다. 뭐? 어떻게 저 상황에서 L이 가장 나빠? 뭐? 어떻게 F가 제일 큰 잘못을 한 사람이지? 라고 놀랐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십대 초반 대학에서 갓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와 완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서로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놀라고 신기해 했던 것 같다. 참 순진했다.


한 친구와는 유독 그가 매긴 순서에 대해 ‘네가 틀렸어’라고 말해주려고 엄청 격하게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 정말 순진했다. 결국 실컷 얘기하고 나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상황’은 만들기 나름이라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구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다시 L과 A가 만났을 때 정말 행복했어? 라는 질문을 누군가 던지면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확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략적인 상황 설명만으로 각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였다. 정말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F의 행동은 문제가 될 수 있지. 근데 L은 죄책감에 안 시달렸어? A는 떨어져있는 동안 그 어떤 심경의 변화도 없었을까?


가정의 가정, 각자의 상황에 자신을 몰입할수록 사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마 법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조악한 정황증거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어라는 핀잔을 들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면 <불한당>은 ‘믿음’에 방점을 찍고 “믿을까? 말까?”라는 커다란 선택을 인물에게 던지며 극을 전개해나간다. 주인공인 조현수(임시완 역)와 한재호(설경구 역)가 서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방심지옥, 불신천국. 영화는 내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한 수 뒤의 한 수 뒤를 생각하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만하는 인물들의 상황들을 실타래처럼 엮어올린다.  


"사람을 믿지 마. 상황을 믿어."


한재호가 조현수를 길들일 때 호기롭게 했던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철두철미하게 사람을 믿지 않았던 재호가 유일하게 흔들린 사람. 현수 때문에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방향으로 전개 되어간다.


그 지점이 아쉬웠다. ‘사람을 믿지 말자’가 유일한 삶의 교훈이었던 한 남자가 어떤 한 사람을 믿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죽는다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짐승같이 살던 상처투성이의 사내가 신뢰를 회복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 죽게 된다는 결말. 이야기가 풀려가가는 방식과 드러나는 메시지가 이전 느와르 영화에서 봐오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결말 시퀀스를 보는 동안 예정된 수순을 밟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 중간 예측했던 방향성을 빗나가는 이야기의 전환점들 덕분에-현수가 먼저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털어놓는다든가, 인숙의 배신이라든가- 높아진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나는 그저 <불한당>을 보면서 계속 소싯적 했던 심리테스트가 생각날 뿐이었다. 상황을 믿는다고 정답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걸 재호는 정말 몰랐을까. 재호는 정말로 현수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지시했을까. 고병갑(김희원 역)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수의 경찰 선배인 천인숙은 더 나쁘지 않은가? 각자의 입장 속에서 상황을 해석하다보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 누가 누가 제일 나쁜지.  


어린 날의 토론으로 나에겐 누가 더 나쁜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살아남을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망해버린 인생이 애달플 뿐이다. 그래서 망가진 인간의 비참함이라도 깊게 공감하고 싶었으나, 혼자 살아남은 현수의 비극이 웅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가 두번째로 이 영화의 아쉬운 지점이었다. 스피디한 액션신들, 트렌디한 편집과 카메라 동선들이 가져온 분위기 때문인지 무엇인지 마지막 현수의 얼굴이 나는 그리 슬퍼보이지가 않았다. 엉망진창인 비극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우리인데, 이중에 더 나쁜 놈은 누굴지 나열하는 헝거게임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국형 느와르를 믿지 말아야 할 것인가. 쏟아져 나오는 세글자 제목의 영화에 이제 조금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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