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라이트는 썸에만 필요한게 아냐

<싱 스트리트> 리뷰

by 블블


나는 식탐이 많은 아이였다. 나에게 형제는 여섯 살 차이나는 오빠뿐이었는데도 먹을 것 앞에서는 항상 치열하게 투쟁하던 아이였다. 세 봉지를 테이프로 둘둘 엮어놓은 세일 상품 과자는 우리 남매에게 늘 골칫거리였다. 두 봉지면 한 봉지씩 똑같이 나눠먹으면 되는 거였는데, 세 봉지일 땐 상당히 난감했다. 누가 한 봉지를 더 먹을 것이냐 매번 실랑이를 했다.


이렇게 일곱개면 망한다. 공평하게 나눠먹어야지.

나는 죽어도 “오빠 그냥 먹어”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였고, 오빠 역시 “그냥 너 먹어”하는 첫째는 아니었다. 식탐 많은 남매였다. 오빠야 한창 자랄 때라 그러려니 하는데 난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았는지. 과자가 먹고 싶었다기보다 오빠가 한 봉지 더 먹는걸 못 견뎌했다. “싫어! 왜 오빠라고 한 봉지 더 먹어야 되는 데에에- (뭐시 중헌디-)”


어느 날은 가위바위보를 하고, 어떤 날은 레슬링을 하고-아홉 살짜리 여동생이랑 레슬링이라니. 아이고 인간아- 그 와중에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한메타자교실 긴 글 연습이었다. 더 빨리 타자를 다 친 사람이 과자 한 봉지를 더 먹을 수 있었다.

혹시 '한메타자가뭐에요' 하는 어린 분들을 위한 추억의 자료. 도스라고 아니 너네가.


내가 친 타자에 오타가 생기면 정확도가 조금씩 낮아졌다. 우리는 정확도 1%가 떨어질 때마다 각자의 기록 시간에 3초를 더했다. 따옴표나 쉼표, 줄 바꿈이 많이 없는 ‘나의 사랑 한글날’ 같은 글을 고르면 꽤 승산이 있었다. 가위바위보를 잘 해서 먼저 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목표 타수가 생기면 더 빨리 쳐지니까.


아홉 살 내 인생. 과자 한 봉지를 더 먹는 건 그렇게나 치열했다.






이렇게까지 길게 우리 남매의 과자 사수 궐기대회를 늘어놓는 이유는, 엊그제 <싱스트리트>를 봤기 때문이다.




<원스> <비긴 어게인>을 잇는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3부작 마침표. <싱 스트리트>. 1980년대 아일랜드가 배경이다. 전 작 두 편과 다르게 성인이 아닌 사춘기 소년 '코너'가 주인공이다. 극심한 경제불황 속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 실업률. 기회를 찾는 젊은이들은 런던으로 줄줄이 떠나가고, 코너의 가족도 위기에 처한다. 집세를 갚을 수 없는 형편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는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한 마디로 현실은 시궁창. 이미 진작부터 현실을 비관한 자유로운 영혼 형 브랜든은 대학을 자퇴했고, 누나는 화가 대신 돈벌이가 되는 건축가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부모님은 이혼을 결심하고, 코너는 하릴없이 침대 위에서 기타 줄을 뜯을 뿐.


절망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깜찍하게도 암울했던 현실 위에 그 시절 음악을 덧칠한다. 듀란 듀란과 아-하, 더 클래쉬, 더 큐어를 끌어들여 뒤범벅을 만들어 놓는다. TV 브라운 관 위로 흘러나오는 뮤직비디오. 비디오테이프. 뭐든지 나보다 잘 아는 형의 수많은 레코드.


IMF와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진 1997년. 우리 모두 불안했지만, HOT의 ‘캔디’와 젝스키스의 ‘폼생폼사’가 덧칠해진 1997년은 ‘응답해라 1997’로 그려진다. 괜스레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 시절이, 그때의 내가 간절해진다. 1980년대의 더블린도 그러하다. 듀란 듀란의 뮤직비디오. 데이빗 보위를 따라한 메이크업. A-ha의 패션.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거대한 흐름이 전환되던 ‘시대’이지만, 동시에 그 시대는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다. 영화는 영리하게 ‘시대’를 ‘시절’로 덧칠한 뒤 그 시절로 끊임없이 삐삐를 쳐 댄다. 거기 그때의 나. 아직 죽지 않았지?




‘시절’에 삐삐를 쳐 대면 연애 이야기보다 가족 이야기가 호소력이 커지는 모양이다. <응답하라 1988>을 더 이상 혜리의 남편 찾기만을 위해 시청하지 않았듯이, <싱 스트리트> 역시 라피나와의 썸, 로맨스보다 형 브랜든과의 싸움이 더 큰 관전 포인트다.



대부분의 영화-아니 모든 이야기들은 가장 큰 갈등의 두 축을 관객에게 충분히 주지시키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이 영화는 브랜든과 코너의 갈등이 영화 후반부에서나 급작스럽게 드러난다. 나에겐 오히려 이 뒤늦은 브랜든의 ‘버럭 씬’ 이 <싱 스트리트>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지점이었다.



내 경험상 가족 내에서의 갈등은 곪아 터지기 전에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힘들다. 그것은 엄청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내가 겪어온 가족, 우리 집은 그랬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오빠가 제대하고 나서였나. 오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는 늘 빨간불이라고, 나는 늘 그 신호등 앞에 서서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넌 언제나 빨간불이라고. 한 번을 내 맘대로 지나갈 수가 없다고. 항상 나만 양보하고 나만 기다린다고.


일단 오빠가 그런 문학적 은유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점에 크게 놀랐다. 더 큰 충격은 꿈에도 오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는 데에서 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할 수 있다는 점에 두 번 놀란 것이다.


그때 오빠에게 기껏 했다는 말이 “왜 말 안 했어. 진작 얘기하지. 난 몰랐잖아”였다. 내 인생 최악의 대사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랑 과자 한 봉지 때문에 한메타자 교실 쳐대던 오빠가 맞나 싶었다. 처음 보는 오빠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브랜든 역시 빨간불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가르쳐주던 음악을 듣던 동생이 근사한 음악을 만들고, 밴드 공연을 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드는 복잡 미묘한 감정. 나는 살 길이 막막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저 녀석은 마냥 신났어.


가족인데, 내가 형인데, 나는 왜 내 동생 대하기가 왜 이렇게 점점 불편하지. 일단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시 나 지금 너 질투하냐’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이 감정을 부정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지지 않고서는 표면 위로 떠오르지 못할 갈등인 것이다. 브랜든의 심적 동요가 영화 후반부까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작부터 ‘코너’의 관점에서 진행되기에 형의 감정선은 안중에도 없을 수밖에. 당연하지. 형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조차 동생들은 모르니까.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 평범한 조력자에 머물렀던 브랜든은 ‘버럭 씬’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인물이 된다.


이 ‘뒤늦은’ ‘급작스러운’ 형의 버럭이 나에게는 너무나 리얼했고 동시에 감동이었다. 나 역시 ‘뒤늦은’ ‘급작스러운’ 오빠의 하소연을 들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건 뭔 뜬금포 갑툭튀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진짜 형제의 서사로 느껴졌다. 그렇지. 이게 진짜 형제지. 진짜 남매지.


세상에 좋기만 한 관계는 없다. 그게 아무리 살 비비고 사는 가족이라도. 관계의 완벽함을 신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 배려할 수 있게 된다. 형이 거기 계속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다. 결국 '좋은 형'이라는 껍질을 부수었기에 브랜든은 동생을 진정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된다.


뮤즈 라피나도 라이징스타 싱스트리트 밴드도 내겐 별로 안 중요했다. <싱 스트리트>는 영화 그 자체로 감독이 형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다. “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바로 형 때문이었어. 고마워 형”이란 카드가 함께 담긴, 오래 파란불을 기다려온 형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나는 오빠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내가 타자를 정확하게 칠 수 있는 건 다 오빠 덕분이야. 고마워” (??))


어쩌면 <싱스트리트>에서 음악은 맥거핀 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오빠와 내가 미친 듯이 쳐대던 한컴타자 교실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를 수놓는 음악이 그 시절을 아름답게 덧칠하는 물감이라면 그 시절을 진짜 그립게 하는 건 형과 함께하던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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