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차례가 된 것 뿐이야

<남영동 1985> 리뷰

by 블블

* 2012년 11월 22일에 작성한 글


[전두환 정권 당시 김근태 전 국회의원 불법감금과 고문 당함]


영화를 보기 전 군부독재의 고문에 대해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은 이것이 전부였다. 한 줄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교과서적 설명. 그러나 영화 내에서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스토리로 전환되어 다가왔을때, 나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새삼스레 사실설명과 다른 스토리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극장은 남영동 고문실이다. 불법 감금이 하루 이틀, 열흘이 넘어가고 스무날이 넘어가는 동안 끝나지 않는 고문에 관객들은 도망가고 싶어진다. 장면을 대면하고 있는 순간 순간, 역사의 부채의식과 같은 거대한 문제를 고민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선 일단은 그 장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그녀의 저서인 <타인의 고통>에서 사진 속 전쟁의 고통들이 교묘하게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사진 속 피해자의 고통은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는 일어날 수조차 없는 ‘저 너머’의 아픔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 사진에는 주로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사상자가 백인일 경우, 얼굴을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촬영한다. 사진을 보게 될 백인들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한 일종의 현실 조작이다. 사진 속 전쟁의 참담함이 사진을 보게 될 사람들의 현실에 침투하지 않도록 구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진 속의 피해자들은 시공간적으로 ‘나’와 분리되었고 그에 따라 대상화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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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영동 1985는 고통을 결코 타인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 김종태의 고통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그의 나체는 화면 뒤로 숨겨지지 않았고, 그의 굴욕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밥을 먹는 김성태의 옆에서 발톱을 깎고, 고춧가루를 탄 물을 그의 얼굴에 끊임없이 들이붓는 등 장면들은 하나 같이 피해자의 고통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 남영동 1985가 손택이 설명한 전쟁 사진들과 달라지는 지점이다. 비참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폭력의 잔인함을 숨기지 않고 대면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당신 차례가 된 것 뿐이야” 라는 종태 아내의 말은 관객에게 이 불합리한 폭력이 나와는 분리된,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뿌리째 흔들리게 한다.


스크린 안을 ‘저기’로 구분지을 수 없게 되는 폭력과의 대면, 그로 인한 자기 방어 불능상태는 충분히 우리들을 공포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이것이 장면 하나 하나에서 일단은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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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프고 힘들다. 부당한 권력과 그것이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개인이 무너지는 과정을 꿋꿋이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면상의 기호로써 ‘고문’ 혹은 ‘남영동’의 의미(fact)와 다른, 영상과 서사의 힘이다. 남영동 1985는 역사로서의 사실, 즉 타인의 고통을 우리 삶 속으로 끌어들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했다. 손택은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특권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더 이상 김종태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을 나누는 것이, 이 영화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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