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역은 언제 올까

<인사이드 르윈> 리뷰

by 블블



더 못 들어올 것만 같은 것이 분명했는데, 사람들은 매번 다음 역에서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이전 정거장의 문이 닫힐 때 분명 나는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 이전 정거장에서 문이 닫히고 다음 정거장으로 실려가는 동안 생각했다. 당연히 이 지하철에 사람이 더 탑승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렇게 좁은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깜빡거리고 숨을 쉬는 일 뿐인데.


그러나 다음 정거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맹렬히도 내가 구겨져 있는 이 열차로 올라탔다. 아무도 내리지는 않는데 사람들은 계속 올라탔다. 아니 지금까지 모두들 최소한의 부피로 구겨져 있던 거 아니었어? 모두들 방금 전보다 더 구겨질 수 있는 거였어? 놀라고 있을 틈도 없이 불행은 그렇게 환승역까지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그러니까 나에게 밀려올라타는 사람들은 삶에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불행같았다. 분명 지금보다 더 최악은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 순간, 삶은 다음 역에 도착하여 거침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해결되는 고통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들이 나에게 몰려왔다. 다음 역에서도, 다 다음 역에서도 추호도 내릴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실린 이 열차가 환승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환승역을 기다리며 내가 떠올린 영화는 <인사이드 르윈>이었다. 르윈(오스카 아이작 분)은 당장 오늘 밤 잘 곳도 없이 지인의 집들을 떠돌아다니는 뮤지션이다. 한 때 듀엣 앨범을 냈었지만, 사무실에는 그 음반 재고가 쌓여있다. 추워지는 날씨에 코트를 살 돈도 없다. 이미 르윈은 더 구겨질래야 구겨질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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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바닥일 수 없는 그의 삶에도 다음 정거장의 불행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먼저, 하룻밤 신세를 진 은사님 댁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고양이를 잃어버린다. 그 다음, 친구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분)의 여자 친구인 진(켈리 멀리건 분)이 임신 소식을 알려온다. 축하할 일이 아니다. 혹시 자신과 진 사이의 아이일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르윈은 낙태 시술비를 벌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버지의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악적으로 성공할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문제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자꾸만 다음의 문제들이 벌어진다. 영화의 다음 장면, 그리고 그 다음 장면. 영화의 중반을 넘어가도 르윈에겐 여전히 악재가 계속된다. 매번 새로운 시퀀스가 진행될 때마다, ‘아직 더 안 좋을 일이 남아있었다니’ 하며 놀라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구겨질 수 없다고 여겼지만 신기하게도 르윈의 삶은 꾸준히 구겨져만 간다.


<인사이드 르윈>은 기승전결 없이 영화 내내 꾸준히 같은 코드 같은 멜로디를 반복한다. 하루하루 저마다의 불행들이 르윈에게 다가온다. ‘저러다 분명히 잘 풀리겠지’ 영화 속에서 빈번히 벌어져왔던 기적·우연·행운과 같은 요소를 기다린다면 매우 실망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판타지는 단호하게 오려낸 뒤 지옥철 같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한다. ‘우린 아마 안 될거야’를 담백하고도 차분하게 우리 귀에 속삭인다. 르윈의 모티브가 된 데이브 반 롱크가 실제로는 인지도가 꽤 높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감독의 의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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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리고 안 풀려서, 르윈과 함께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어찌 되었든 지금 여기서부터 지금의 불행을 껴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달리 대안이 없다. 환승역은커녕 종착역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하며 한 역, 한 역, 차례차례, 차곡차곡, 몰려오는 불행들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에 이런 행운이’ 같은 기적이나 기존의 불행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리셋버튼은 애초에 없다. 인생을 살아내는 요령 따윈 없다.



그러니까 세상에 노여워하거나 슬퍼하며 힘빼지 말자. 아마 우리는 내일도 힘들테니까. 어쭙잖은 멘토들의 힐링보다 ‘아마 안 될거야’ 라는 자조 섞인 냉정함이 오히려 더 위안이 됐던건, 매일 아침 지옥철에서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상 더, 더, 더 많이 올라탔으니까. 그래도, 환승역인지 종착역인지도 안 가보면 모르는 일이니. 그래봤자, 딱히 안가도 뭘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오늘도 각자의 지옥철 속에서 건투하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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