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발가락

존재합니다

by 블블

처음 보는 분위기 좋은 카페. 용기를 내어 들어간다. 한참 열심히 메뉴판을 본다. 결국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발길 닿는대로 올리브영이나 롭스에 들어간다. 나열된 샘플들을 괜히 뒤적거려본다. 결국 1+1 할인상품의 바디 클렌저만 사서 나온다. 그럴 때, 괜히 양 쪽 네 번째 발가락에 힘을 줘 본다. 거기 그 발가락이 잘 있다는 느낌이 들면 생각한다. 그래 원래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1+1 특가 바디클렌저가 피치, 자몽, 오트밀 같이 다양한 향을 가져서 다행이다. 질리지 않을 테니까.


고3 아이의 국어 과외를 맡은 적이 있었다. 미술을 하는 아이였고, 방과 후 밤 열한 시 반까지는 미술학원에서 실기를 해야만 하는 학생이었다. 수학은 진작에 포기했고, 인서울을 위해서는 국어라도 3등급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 아이. 과외는 자정이 다되어서야 겨우 시작했다. 막차와 상관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였지만, 오가는 길은 꽤 인적이 드물었다. 집에 오면 새벽 세시가 다되어가곤 했다.


늦은 새벽이다 보니 아무래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어느 여름날엔 비까지 쏟아져 너무 무서웠다. 집에 빨리 가고 싶어 맘이 조급해졌다. 어두컴컴한 길에 계단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샌들 신은 발을 내딛다 계단턱에 맨 발톱이 그대로 부딪쳤다. 심하게 아팠다. 문턱에 발가락 찧었을 때보다 두세배 더 아팠다. 살이 아리긴 했지만 다행히 걷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피를 보면 더 아플 것 같아서(더 서러울 것 같아서), 딱히 해결할 방법도 없어서 그냥 일부러 앞만 보고 집까지 걸어왔다. 그때 돌아오던 길엔 정말 누군가의 목소리가 간절했는데, 아무에게도 전화할 수 없었다. 새벽 두 시 반. 외로운 시간엔 항상 그렇듯, 모두 잠들어 있다. 후두둑. 빗소리가 무지 컸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어디를 어떻게 부딪친 건지 알게 되었다.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었다. 셋째인지 새끼인지 어떤 발가락이 아픈지도 모르고 그렇게 삼십 분을 걸어올 수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겨우 씻고 앉아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발톱이 완전히 들렸는데 아프지 않아서, 살짝 들어보니 그 아래로 이미 새 발톱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나. 여태 발톱을 깎을 때 난 뭘 깎은 건가. 뭔가 두꺼워진다 생각만 했지 발톱 밑에 발톱이 또 자라고 있을 줄이야.


그 날 처음이었다. 네 번째 발가락을 그렇게 오래 관찰해본 일이.


살면서 한 번도 따로 떠올려 본 적 없는 그냥 거기 있는 그 발가락. ‘네 번째'라고 순서조차 붙여준 적 없었던 여러 발가락 중 하나.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네 번째 발가락을 한참이나 만지작만지작했다. 계속 만지작거렸다. 뭐든 떠올리고 싶었다. 네번째 발가락과 관련된 뭐라도. 뭔가 있지 않을까. 여기 이렇게 분명히 내 손에 잡히는데. 뭐라도 떠올라라. 그렇게 계속 만지작거렸다. 애를 써봤지만 어떤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네 번째 발가락에 관한 어떤 기억도 없었다.




‘지망생’의 인생은 사실 꽤나 비참하다. 그래 대놓고 징징거려볼 테다. 어디를 가든 아메리카노를 시켜먹는게 습관이 되었고, 이젠 습관을 넘어 취향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친구를 만나 거나하게 밥을 먹고 계산을 할라치면 카드가 한 번에 긁힐지 아닐지를 걱정한다. 재빨리 폰으로 계좌조회를 해 본다. 어버이날에는 용돈 대신 남대문 꽃시장에 가서 카네이션을 두 단을 사와 꽃꽂이를 한다. 몰고 다녀올 차 따위는 당연히 없고 신문에 둘러싸인 꽃들을 한 아름 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대중교통 안에서 꽃의 얼굴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버겁다. 올해 어머니 아버지는 환갑이셨다. 아무것도 못 해 드렸다.


누가 그렇게 살래? 네가 선택했잖아. 그렇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책임도 진다. 지려고 하고 있다. 더불어 감사하게도 서울에 돌아갈 집이 있고, 어머니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직업을 가지셨었고, 오빠도 건실하게 살아간다. 정말 고맙게도 난 내가 알아서 살 일만 걱정하면 되는 천혜의 베짱이 환경을 가졌다. 아직 더 방황하고 고민해도 된다. 그래서 이렇게 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비참해지는 순간이 있다. 정말 사랑하는 친구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는 날. 축의금 걱정부터 한다거나.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하다 근처 대형 건물로 출퇴근하는 대학 동기를 만난다거나. 그 동기가 내미는 회사 카드로 결제한 뒤 영수증과 함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 한다거나. 회사 카드를 돌려받았던 그 아이가 다른 자리에서 '넌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할 때 기운 빠져 웃을 수밖에 없다거나. 단지 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까지 애쓰는 일이 왜 비참함과 연결되어야 하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발 속 네 번째 발가락에 힘을 준다. 그냥 지금 나는 왼쪽 네 번째 발가락이다. 나는 정신 못 차린 아이도 아니고, 꿈 때문에 뭘 잘 참는 대단한 아이도 아니다. 그냥 나는 거기 있다. 삶은 벌어지고, 나는 그 벌어진 일들 사이에 서 있다. 어쩌다 가끔 손가락으로 매만져지는 왼쪽 네 번째 발가락일 뿐이다. 비참한 일상 따위는 없이 그저 거기 있는. 그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어떤 향기를 써야 할지 8400원짜리 바디클렌저를 사면서도 고민하는. 벌어진 일들 사이에 그냥 있는. 손가락처럼 심장과 가깝지 못해 그 어떤 상징조차 얻지 못했을지라도. 가끔 조용히 앉아 만지작거릴 때 왜인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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