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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Jul 21.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14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블블님의 취미 생활이요~ 이런것도 해봤다!

가장 좋았던것 추천 해주세요~      



    

내 인스타그램 타임라인 절반은 꽃사진으로 채워진다. 플로리스트의 계정을 쉴 새 없이 팔로잉한 결과다. 늘 마음 속 한켠엔 꽃꽂이를 더 배워야지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한창 심취했을 때는 꽃 도매시장 정도는 수월하게 다니고 싶어 무리해서 남대문 대도상가, 강남 고속터미널을 혼자 찾아가 꽃을 사오기도 했었다. 욕심 부려 소재(메인이 되는 꽃을 받쳐주는 배경이 되는 풀이나 가지, 작은 꽃)를 너무 많이 사서, 지하철을 타고 오며 계속 옆 사람 얼굴을 잎과 가지로 치는 민폐를 범하기도 했다. 늘 사고 싶은 종류는 많은데 도매시장이라 적은 양을 살 수도 없고, 그것을 다 옮길 재간도 없어서 몇 번 다녀온 뒤로 그만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깝지 않은 꽃시장에, 혼자 굳이 찾아가서 무언가 구경하고 사보았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었던 것 아닐까.      




대충 아무렇게나 꽂아도 예쁘니까. 그래서 꽃꽂이가 좋았던 것 같다. 마음 내키는 대로 꽂아도 늘 아름다우니까. 손재주가 없는 나여도 항상 아름다운 결과물을 가질 수 있어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다양하게 다 예쁜 꽃, 내 멋대로 잡아도, 나를 거쳐가도 예쁨이 결코 흩어지지 않았던 꽃과 풀들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리.





사진구독만 하는, 이제는 멀어져간 취미인 꽃꽂이와는 달리, 요즘 가장 주기적으로 하는 활동은 필라테스다. 간헐적 휴식기가 있었지만 1년 조금 넘게 주2회 운동을 꾸준히 나가고 있다. 여전히 바렐이나 체어를 하고 나면 계단 벽을 부여잡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내려오지만, 처음보다는 확실히 조금 나아진 걸 느낀다.      




다리와 척추를 뻗고 곧게 앉아 있다가 배에 힘을 주고 뒤로 ‘천천히’ 누울 수 있게 되었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이 동작 하나에도 코어에 얼마나 큰 힘이 들어가는지 필라테스 동지들은 알 것이다. 처음엔 그 기본자세를 제대로 따라하지도 못했다. 배에 근육이 없어서 뒤로 몸이 기울어지면 버티지 못하고 바로 바닥에 어깨와 뒤통수가 닿으며 쓰러졌다. 골반을 중립상태로 만들라는 말이 대체 뭔지, 스쿱하라는 말은 또 뭔지. 도통 뭔 소린지 모르겠어서 골반을 올리라는 말에 똥배를 앞으로 힘차게 내밀었다가 선생님을 꽤 많이 웃겨드렸다. 그랬던 꼬꼬마가 이제는 부드럽게 등과 머리를 바닥에 댈 수 있고,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턱 당기고 몸을 올려 일어난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거지” 라는 퀸연아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갈까 말까 고민같은 것을 집어던지고, ‘그냥 한다!’의 정신으로 침대에서 9시 40분쯤 일어나면 물 한잔 마시고 레깅스와 토삭스를 신고 열시 수업을 들으러 간다.            




어차피 엉망진창인 똥몸이었기에 복근이나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냥, ‘아침을 시작하게 해주세요.’ ‘침대에서 몸을 떼낼 수 있게 해주세요. 일단 밖으로 나가게 해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상태가 ‘나아진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도 그 기간동안 전혀 불안하거나 조급해지지가 않았다. 못해도 괜찮았다. 못하는게 너무 당연해서, 나 혼자 무릎이 다 펴지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많이 쓰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는 동작을 하면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날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아침에 눈떠 기구를 만지러 가기까지만 해도 이미 다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빨리 나아지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아서, 필라테스를 1년 동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필라테스를 하면서 그게 참 좋다. 여전히 엉망진창이어도 내가 조금도 불안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런 마음이라면 언제까지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하는 게 뭔지 처음 알게 된 기분이다.                    





꽃꽂이와 필라테스, 전혀 다른 활동이지만 내가 이 두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같았다. 둘 다 결과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꽂아도 꽃은 이미 꽃이라 예쁘다. 예쁘지 않은 꽃과 소재는 없기 때문에 결과는 무조건 예쁘다. 필라테스는 여전히 잘 못하지만 못한다는 사실이 내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질 않는다. 못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매일 다음날 근육이 아프지만 괜찮다. 어제 운동을 꽤 정확히 했나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와 그거 조금했다고, 이렇게 온몸이 아우성치는 쓰레기몸일까’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이 두가지 활동 외에는 그런 태도로 일에 임한다는 뜻일거다. 무슨 일을 하든, 성과에 조급해하고,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극심하게 몰아붙이는 태도로 몰입하지 못하는 일. 불안해하다가 결국 시작도 하지 않는 일들이 이미 많았다는 의미일 거다.           




원하지 않으면 치루지 않아도 된다. 그저 불안을 억누르기 위해, 나를 증명해내려는 시험을 억지로 끌고 와 치루고 있는건 아닌지 이제는 어떤 일을 시작 하기 전에 생각해보려고 한다. 꽃꽂이나 필라테스 같은 일들만으로도 내 일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자유’가 내게 있다는 걸 늘 상기하려고 한다. 불안을 다스리지 못해 시작한 증명시험은, 좋은 성과와 관계없이 계속 나를 불안하게 하니까. 이제 증명을 위해 시험에 드는 일은 그만두고, 지금 나를 기쁘게 만드는 일에 몰입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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