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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Jul 28.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15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찌질했던 내 사랑의 기억      




내 사랑은 언제나 남보다 변변하지 못한 상태여서, 굳이 기억을 끄집어내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의 찌질함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나의 장점을 꼽자면 맞장구를 잘 쳐준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공연장에 가도 소리를 매우 잘 지르고,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도 상대의 말끝마다 내가 내는 “응” 소리가 거슬린다는 청취자들이 있을 정도로 ‘나 잘 듣고 있다’는 시그널을 말하는 사람에게 꼭 꼭 보내고, 목소리는 작지만 박수도 굉장히 크게 칠 줄 안다. 웃음소리도 어지간히 커서 옆 반 친구가 수업시간에 자기 교실에서 내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쉬는 시간에 와서 말해준 적도 있었다. 격정적인 호들갑은 떨지 못해도, 적절한 리액션은 꼭 티나게 하려고 노력중인 사람이다. 순전히 내가 말할 때 상대방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내 얘기가 재미가 없나’에서 ‘나를 싫어하나’로 단숨에 도약하는, 쉽게 눌리는 나 자신의 불안감 때문에 생겨난 특질이겠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몸으로 기민하게 반응을 하다보니, 실제로 생각도 그렇게 하게 되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잘하고 있어’ 라는 마음으로 상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친구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별로 내 친구가 잘못한 건 없다. 저마다 다른 입장과 복잡하고 입체적인 상황이 고민과 갈등을 키우기 때문에. 각자가 서 있는 지점에서 다 충분히 할 법한 마음의 부침들이다. 그래서 빈말이라도 다정하고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따뜻한 말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처로 남을 말들은 피하려 신중히 말을 고른다. 요즘은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냐면 모든 말이 조심스러워 결국 아무 말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되도록 말을 아끼고 함께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는다. 내가 힘들 때 친구들에게 받은 만큼까진 못하더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돌려주려는 노력은 열심히 한다. 타인에게 다정하려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 사랑의 찌질함이 돋보이는 부분은, 이런 노력과 다정함을 애인에게는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처 되지 않는 말을 신중히 고르는 상냥함은 나와 대상간의 거리감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난 주말에 내가 뭘 먹고 싶어했는지, 내가 무슨 색 칫솔을 쓰는지, 우리 가족의 시시콜콜한 속사정까지 다 알고 있는 애인은 나와 동기화가 진행 된 지 오래인 것이다. 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나를 대하는 태도와 완전히 같아져버렸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엄격한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는 것처럼 대하는데, 애인에게도 엄격한 부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계획한 대로 시간을 쓰지 못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멍청한 짓을 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퍼질러 있을 때 등등. 여러 가지 장면 속에서 나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이 그대로 애인에게도 날아간다. 버튼이 눌리면 나는 이미 끝도 없이 애인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나의 발길질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내가 좋다고 옆에 서있는 너를 보면 엉망진창인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곁에 누구도 두지 않았던 날들을 보냈는데. 그런 날들은 통째로 편집당한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런 날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야 너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 




나를 남처럼 대하는 연습을 계속해서 한다. 나에게도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준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나도 나를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그럼 동기화된 너에게도 다정해질 수 있겠지. 그래야만 너에게 독화살을 날리지 않는, 다정한 애인의 모습이 될 수 있을테니까. 세상 재미없는 농담에도, 옆집까지 들릴 정도로 웃어주고,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어도 열심히 ‘응응’ 대답하는 상냥한 사람이. 부끄럽게도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그래서 이런 부족한 내 옆에서 나를 안고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 이런 찌질한 내 사랑이 자라나도록 기다려주는 어지간한 사람이라 나도 나를 좋아해 볼 용기를 낸다. 다음 페이지에는 찌질하지 않은 변변한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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