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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Aug 02. 2021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18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진로고민 끝에 이 길이구나.. 했을 때요 그리고 그 길을 가면서 애틋한 마음?이요



뭔가 거창한 일이 벌어질 거라 기대했던 때가 있다. 우연히 떠돌던 나의 에세이가 엄청난 유명인의 눈에 띈다던가, 고작 몇 편 쓴 드라마 단막 대본이 떠돌다가 감독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읽혀 만들어보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든가. 그런 로또 맞는 기분의 우연이 나에게도 일어나는 일.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엔 나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자신의 글을 써내려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기회는 마땅히 그런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행운이 일어날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니까. 스스로도 긴가민가할 때에는 이 길이 마이웨이라는 확신을 그런 행운과 우연으로 확인받고 싶어 했다. 


시간이 흘러 정작 ‘이 길이구나’ 했을 때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글에 대한 재능도 열정도 없는 것 같아 다른 일을 하려고 기웃거려보니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야에 갖고 있던 흥미도 막상 들춰 보니, ‘조금 늦어도 괜찮아! 즐겁잖아!’ 하는 마음으로 뛰어들 만큼은 아니었다. 그냥 글쓰기가 힘들어 주변에 가졌던 작은 흥미들이 내 맘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졌던 건 아닐까. 작은 재미와 흥미들을 ‘업’으로 여기고 진지하게 접근하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여전히 내가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할 수 있는 카테고리는 그나마 ‘작가/시나리오’이다. 비교우위에 있고, 싫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그 분야이고, 나에게 경력이란 그 부분의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친구나,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에게나 경력이 쌓이는 건줄 알았는데, 나도 나름의 경력이 먼지만큼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나만 가진 이 얕고 희미한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만큼 재밌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계속 글을 써나가는 수밖에 없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구나. 생존의 압박과 현실감 속에서 이 길이구나란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의 느낌으로 나는 ‘이 길이구나’ 했다. 자아실현이고 나발이고 일단 먹고 살려면 써야 되는구나. 대단히 늦게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직시하게 된 진로였다. 어떤 몰랐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하는 일 따위는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씁쓸하지만, 이렇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각색과 편집을 통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가져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렇다. 


그래서 이 길을 가면서 생기는 애틋함이란, 생업을 잇는 사람들의 고단함과 비슷할 것이다. 늘 책상 서랍 한 구석에 사직서를 넣어놓고 하는 회사생활처럼, 하기 싫어도 해야 해서 하는 일처럼 글을 쓰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들끓지 말고 그만 아파하면서, 미지근한 온도로 오래 일하고 싶다. 오래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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