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명소가 된다

동네 단골집 이야기

by 연은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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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엄마랑 동네 모닝글로리 문구점에 가서 아이에게 필요한 영어공책을 샀다.

공책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데 남편 사장님 왈

"두분이 친구예요?"

아내 사장님 거들면서

"아이들이 친구인가보다"

정확하게 보셨다.

"네"

내가 말을 받는다.

"벌써 둘째가 중학생이 돼요. 사장님은 문구점 오가는 아이들 보면 세월가는 걸 느끼시겠어요."

사장님 부부가 대답한다.

"아이쿠, 물론이죠. 꼬맹이 아드님이 키가 쑥 큰것 보면 신기해요"

"맞아요. 딸도 애기였는데 볼때마다 깜짝 놀라요."

처음에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우리 아이들은 7살, 4살이었다.

사장님은 한동한 우리 아이들을 '백두산' '한라산'이라고 불렀다.

첫째 아이와 중국접경지역 역사여행을 다녀 온 후 첫째는 '백두산'이 되었고 제주 한 달 살이를 다녀오고 둘째 딸은 '한라산'이 된 것이다. 아이들이 사장님이 지어 준 별명을 은근 좋아했다.

동네 엄마가 말한다.

"근데 사장님네는 어떻게 하나도 나이가 안 드세요? 똑같아요. 아니 더 젊어지신 것 같아"

친구엄마의 너스레에 두 분은 말도 안 된다며, 손사레를 저으시지만 싫지 않은 밝은 표정이다.


아파트 대단지 안 상가에 드림팰리스 문구점이 하나 있었고 아파트 밖 도로변 맞은 편에 모닝글로리가 있다. 위치는 사실 초등학교 코 앞이라 아파트 안이 더 좋은데 드림팰리스는 코로나 타격을 버티지 못하고 폐점하고 말았다. 모닝글로리는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고 지금도 건재하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는 너무나 분명하다.

가게를 떠올렸을 때 모닝글로리는 성격좋은 호감형 부부 사장님이 딱 떠오르고 드림팰리스는 사장님이 기억나지 않는다. 문구점 실내도 두 곳은 차이가 난다. 좁지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모닝글로리에 비해 드림팰리스는 어수선해서 가끔 문구류를 사러 들어가면 몸 여기저기 부대껴서 스트레스가 올라왔다. 아이들도 나와 똑같게 느꼈다. 학교 바로 앞에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이용할 수 밖에 없는데 아이들한테 살갑게 대하는 사장님이 아니었다.


아파트 안에 있는 편의점이 두 곳 있는데 이마트 편의점 직원은 색으로 표현하면 무채색이다. 딱 봐도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인다. 돈을 받고 물건을 내 주지만 땡땡땡 무명씨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후문 입구쯤에 있는 GS 편의점에는 아르바이트생은 아주 잠깐 있고 중년의 여자 사장님이 자주 보인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거의 사지 않지만 그곳은 택배를 부치러 종종 가는 곳이다. 택배를 부치고 계산을 하는 짧은 시간에 사소한 말 몇 마디 주고 받는데 그 말에 따뜻함이 묻어있다. 앞으로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살 땐 이곳에 와야겠다 생각하며 문을 나선다.


동네 눈에 띄지 않는 곤드레밥집이 있다. 도로변이 아닌 골목 안쪽이라 위치도 좋지 않는 평범한 식당이지만 아파트 엄마들 사이에 맛집으로 알려져있다. 나도 아는 엄마들 따라 몇 번 갔다. 사장님은 엄마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 안부를 묻는다. 다른 팀 엄마들하고 가도 사장님은 너무 반가워하며 안부를 챙긴다. 농담 보태 엄마들이 한 번씩은 가 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박한 그 식당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수 년째 영업중이다.


몇 년째 이용하는 단골 미용실 원장님은 지난 12월에 치룬 일러스트페어전때 전날 오면 드라이 셋팅을 해줄 테니 이쁘게 하고 참가하라고 하셨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전날 예정에 없던 헤어 클리닉을 하고 돈을 냈다. 손님은 대부분 오래된 단골 고객으로 예전 샵을 했던 인천에서도 오고 이사를 멀리 가도 머리를 하러 일부러 오는 단골들이 많다. 원장님 먹으라며 이것저것 사오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머리하러 갔는데 시골에서 김치, 총각김치를 많이 보냈다고 한 봉지씩 싸주셔서 집에 와서 맛있게 먹었다.


맛, 제품이 평균 이상이면 그 다음 차별성은 사람이다. 내가 이 집 단골이 될 것인가의 잣대는 가게의 얼굴, 사장님이다. 사장님과 1대 1 관계 맺기가 되어야 한다. 가게를 떠올렸을때 무생물인 가게만 덩그라니 떠오르고 그 중심에 사람이 없다면 서로간에 얼굴없는 사장과 459번째 고객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런 곳은 재미가 없다. 누구도 나를 엑스트라로 여기는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진 않을 것이다.


색이 없는 가게들. 어떤 일을 하든 무미건조하게 하면 기가막히게 상대방이 그 기운을 느끼고 딱 그만큼 거리를 유지한다. 시장에 가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고객을 기억하는 건 무리임을 알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건을 팔 때 '감사합니다'하는 인사도 으레히 하는 인사치레로 느껴진다. 돈을 받자마자 나라는 사람은 관심 외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온다. 그 중 몇 군데 살가운 곳이 있다. 떡을 서비스로 챙겨주며 눈을 보며 인사를 건네는 떡집이 있고 전에 내가 무엇을 샀는지 기억하는 만물상이 있다. 내가 특별해서 기억할까.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눈빛과 말 한 마디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곳이 내게는 단골이 된다. 사람을 보러 또 한번 발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가게엔 사람냄새가 난다. 따뜻한 색이 그려지는 사람냄새나는 가게는 나한테 명소가 된다.

그냥 일을 하는 건 누구나 하지만 마음을 다해 일하는 건 아무나 못 한다. 그러려면 자신만의 삶의 가치, 어떻게 살겠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니까. 소명의식이 있냐 없냐에 따라 어떤 태도로 일하는지 나타난다. 이왕 하는 일,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사랑의 주파수를 쏘면 좋지 않은가. 사람은 기분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어 있다. 수많은 가게중 단골이 되는 까다로운 고객의 최종 기준은 사실 말랑한 감성임을 장사를 하시는 사장님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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