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끝이 시린 이유

반성문 한 장

by 연은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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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상시간은 6시, 1시간 30분 동안 부지런히 루틴을 끝내고 7시 30분이 되면 큰 방으로 들어간다.

굿모닝.


남편이 꿈쩍꿈쩍, 딸내미는 꿈틀꿈틀

넓은 가족 침대를 쓰고 있는 안방에 남편은 왼쪽 끝에, 딸은 오른쪽 끝에서 자고 있다. 그 사이 가운데가 내 자리다. 아직 방독립을 하지 않고 함께 자는 딸내미는 태어난 후로 꿋꿋이 내 옆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남편의 손은 두툼 두툼, 딸의 손도 두툼 두툼. 남편은 겨울에도 몸이 따끈따끈. 딸의 몸도 따끈따끈. 둘 다 여름에 태어난 때문일까 열 많은 체질도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 남편은 나이가 들었고 담배냄새가 나고 딸은 안으면 포근하고 어린 살냄새가 난다. 당연히 녀석을 안을 때 기분이 좋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주스를 갈고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하기 전, 딸이 자고 있는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가 딸을 깨우며 집적거리기다. 살짝 끌어안으면 자동으로 팔을 내 가슴에 올려 착 안긴다. 이때 느낌은 따끈따끈 호빵을 안은 것 같다. 포근한 이불속에 말랑하고 따끈한 호빵을 안고 있으면 세상 부러운 게 없다. 잠에 취한 아이의 눈썹을 손으로 그리고 이마의 머리를 연신 뒤로 쓸어 넘긴다. 말랑한 뺨을 살짝 집었다 놓는 동작을 반복한다. 꼼지락거리는 발이 내 무릎과 발에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등을 쓰다듬는다. 더 이상 이 아이에게 욕심을 내지 말자. 이렇게 잘 자고 잘 놀고 잘 크는데 뭘 더. 언젠가 이 말랑, 포근한 느낌도 사라질 텐데 많이 만지며 예뻐해 주자 다짐한다.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속을 들여다본다.

나, 다 알아. 너 대범한 척, 세상 인자한 엄마인 척하더니 아이한테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요즘 게임 원신에 빠져 게임을 하고 카페 활동을 하고 게임 캐릭터를 그려대는데 하루를 쓰는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춘기에 들어선 녀석에게 예민해졌다. 공부할 때만큼은 집중해 주면 좋겠는데 대충 하면서 중간중간 딴짓하는 모습에 부아가 올라 못핏대를 높였다. 사랑이 담긴 눈빛과 사랑해를 연발하던 입으로 독기를 쏘아 올렸다. 나중에 딸내미 좋아하는 최가네 꼬마 김밥 한 줄 사주면서 풀었는데... 가슴 끝이 쓰리다. 예뻐나 말지, 아니면 분노의 레이저빔이나 쏘지 말지. 애를 왜 그렇게 헷갈리게 하는 거니.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커다란 눈. 이생이 아닌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눈. 아니, 현재가 아닌 지나간 소멸된 시간을 쳐다보는 눈이다. 가끔 상상한다. 오늘이 이미 지나간, 아득히 기억도 안 나는 먼지도 남지 않은 머나먼 과거의 날이라면 작은 일에 아등바등, 작은 감정에 아등바등할까. 미약한 생명은 쇠퇴하고 소멸하지만 시간은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시간은 흐르되 흐르지 않는다. 눈이 나를 쳐다본다.

시간을 창조하는 건 당신이야.


두 남매를 데리고 교복을 맞추고 오면서 사준 김밥을 딸이 바로 뜯더니 걸어가며 먹었다. 그러고는 저녁에 속이 가스가 찬 것 같다고 하더니 점점 얼굴색이 허옇게 뜬다. 밤에 두 차례 토를 한다.

매일 하고 싶은 게 많아 늦게 자고 싶어 하는 녀석이 밤 10시도 안 돼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눕는다. 녀석이 아프니 낮에 공부할 땐 제대로 하라고 불같이 쏘던 나는 결국 맥없이 힘을 잃는다. 저, 시커먼 눈과 딸의 확인사살이다.

너나 잘하세요.


저녁에 언니네, 엄마네, 우리 가족 모여 새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며 밥을 먹었다.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가 14년 동안 키우던 고양이 룰루가 몇 달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언니가 말했다.

"친구가 카페를 하는데 주인 없는 고양이 여러 마리 중 한 마리 데려가라고 자꾸 그래."

고양이, 개는 딱 싫어하는 엄마가 말한다.

"이제 고양이 같은 거 키우지 마."

언니는 가만있는데 내가 발끈한다.

"엄마, 왜 그래? 언니한테 고양이는 이미 소중한 존재야."

엄마가 금세 꼬리를 내리고 수긍한다.

"하긴 일본 여행을 가도 고양이 섬에 가고 그랬잖아."

"엄마, 그것도 기억해?"

언니도 마음이 경직되다 풀리는 말투다.


가끔 엄마라고 두는 훈수에 욱하고 올라올 때가 있다.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쉽게 코치를 하려 들면 화가 난다. 부모 자식 간에도 함부로 개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자식이 성인이 되어 독립하면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바라는 건 내가 실수를 하든 어떤 잘못된 결정을 하고 살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은 잘한다. 나는 N년째 엄마로서 사는 중이고 불과 몇 시간 전에 딸에게 바드득거렸던 나를 떠올린다. 가족간에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선을 넘었구나. 그 선 넘음이 서로의 관계에 도움이 되었는가? 노! 학습에 도움이 되었는가? 노! 이제 알겠다. 그 누구에게도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에너지 낭비를 했으니 가슴이 내내 시린 것이다.



NOW AND FOREVER

정화의 시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계의 고양이에겐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손들고 반성.

오늘 저는 겸손한 자세로 아픈 딸을 모시며 하루를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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