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
올해는 어머니 돌아가신 지 10년째가 되는 해이다. 어머니에게 처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스물네 살이었다. 만날 때부터 이미 몸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는 내가 서른아홉 일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 일흔아홉이셨다. 그러고도 10년이 훌쩍 흘렀다. 이제 당신의 막내자식까지 쉰을 넘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20년 가까이 지팡이를 의지해 겨우 거동을 하셨다. 한량인 남편을 만나 평생 포장마차, 동네 구멍가게, 시장도 아닌 골목 한 켠에서 생선장사 등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 환갑이 될 때쯤 풍이 와서 몸이 불편해지셨다. 연세가 드실수록 무릎이 아파 고생하던 어머니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 하소연해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으셨다. 그렇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생각만큼 나아지진 않았다.
명절에 부산 시댁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집 앞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남편이 힘든데 나와있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어김없이 동네 초입까지 지팡이를 짚고 서 계셨다. 어머니는 35년생, 친정엄마는 52년생으로 열일곱 살 차이가 난다. 거기다 남편은 5남 1녀의 늦둥이 막내니 결혼한다고 데리고 온 내가 얼마나 애기 같아 보였을까. 어머니는 힘든 몸으로 내게 하나라도 챙겨주시려 하셨다. 어느 날 문어가 맛있다고 했더니 우리가 내려오기만 하면 비싼 문어를 시장에 나가 따로 사놓고 삶아주셨다. 남편이 말했다.
"우리 엄마는 뭐 잘 먹는다고 하면 줄기차게 해 줘. 소고깃국 맛있다고 한 마디 했다가 몇 년째 먹고 있다."
우리는 서울에 사니 아쉬워도 1년에 명절 한 두버만 볼 수 있었다.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함께 사는 아주버님네 손자에게 향했다. 옛날 사람인 어머니에게 아들손주는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였고 막내조카는 순하고 어질어 할머니를 챙기고 잘 따랐다. 내가 결혼할 때 꼬꼬마였던 시댁 남매 조카는 어느새 장성해 어머니에게 각별했던 둘째 조카가 서울 직장으로 취직해 올라온 지 3년이 되었다. 며칠 전 올해 서른이 된 조카가 설날이라고 인사를 왔다. 조카는 건실한 회사도 다니며 돈도 벌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저녁에 운동을 하며 자기 관리도 잘하는 꽤 괜찮은 남자가 되어있었다.
남편과 나, 조카는 술잔을 부딪치며 이야기꽃을 피워올렸다.
"언제 이렇게 다 컸니, 숙모네는 이제 고딩, 중딩이 되어서 재들 밥 챙겨주느라 바쁘다"
"나는 중, 고등학교때 엄마, 아빠한테 아침밥 챙겨 받은 적이 없어. 오직 할머니가 해주셨어."
"정말?"
그 시기쯤 형님네는 안팎으로 이것저것 장사에 손대다 망하면서 집안경제가 기울어져 두 분 사이에도 불화가 많은 시기였다.
"새벽이든, 밤늦게든 주무시다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챙겨주신 게 할머니셨어. "
조카에게 말해주었다.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단 말이 있잖아.
엄마, 아빠한테 사랑을 다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부모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든 선생님이든, 선배든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건 큰 복이야. 그렇지 않니?"
"그렇긴 하네. 숙모. 할머니한테는 진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것 같아."
어머니를 생각하면 장례 후 화장을 하고 남은 유골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고인의 몸에서 남은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화장이 끝난 자리에 생경하게 보이는 뼈 몇 개와 쇳덩이 하나가 있었다.
처음엔 저게 뭘까 어리둥절했는데 금세 깨달았다.
아, 무릎 수술을 하셨던 그 인공관절이구나.
육신이 사라지니 몸속에 있던 이물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뜨거운 불길이 토해낸 그을린 쇳덩이를 보니 서글펐다. 삶이 덧없게 느껴졌다. 5남 1녀 중 위로 3남을 일찍이 먼저 보내고 남편까지 보내고 아픈 몸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낸 어머니는 뼈와 쇳덩이를 남겨두고 소멸했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 조카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때는 눈물이 많이 안 났는데 대학을 가고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나서 길바닥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남편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3박 4일 혼자 여행을 다녀왔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술잔을 부딪쳤다. 남편이 조카에게 말했다.
"올해는 할머니 10주년 기일이니까 너도 바빠도 꼭 내려와라."
"응..."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짧은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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